커뮤니티

공지사항

[현대불교] [박동춘의 차 이야기] 9. 물 끓이는 다구에 대해

  • 관리자
  • 2024-04-27   조회수 : 41

[박동춘의 차 이야기] 9. 물 끓이는 다구에 대해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24.04.26 14:52

찻물 끓이는 온도까지 고민했던 조상들

시대 거치며 제다, 탕법 변화해
그에 맞는 찻물 온도들도 고려
찻물 끓이는 다두들 맞춰 변모

물을 끓이는 다구인 청동주자. 고려시대에 제작됐다.
물을 끓이는 다구인 청동주자. 고려시대에 제작됐다.

차를 만드는 제다(製茶)에서부터 차를 달이는 행다(行茶)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좋은 찻잎을 얻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좋은 물을 취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차가 있어도, 물이 좋지 못하면 차의 본성과 색·향·미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당대 육우(陸羽), 송대의 구양수(歐陽脩)를 비롯하여 명·청대 수많은 다인들은 좋은 물에 대해 연구하고, 기준을 세우고, 품평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끓이는 도구는 완성된 차를 담는 다완만큼이나 중요한 다구라고 할 수 있으며, 시대별 차의 종류나 음용방식에 따라 그 형태나 쓰임이 달라지기도 하였다.

차의 제다와 탕법(湯法)에는 여러 방식들이 존재해왔지만, 그중에서도 당대에는 〈다경(茶經)〉을 지은 육우가 정립한 덩이차(餠茶)의 제다와 그 탕법인 자다법(煮茶法)이 유행하였다. 자다법에는 찻물을 끓이기 위하여 다정(茶鼎)이나 다복(茶?), 다요(茶)라고 하는 낮고 널찍한 작은 솥이나 쟁개비(냄비)가 사용된다. 당대 염립본(閻立本)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소익잠란정도(蕭翼蘭亭圖)〉를 보면 자다법에 사용된 차솥의 모양과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이러한 형태의 장점은 물이 끓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 편하여 적정한 찻물의 온도를 가늠하기에 좋다. 또한 물이 끓으면 여기에 찻가루를 떠 넣은 후 긴 젓가락이나 수저로 휘저어 차거품을 만들고 표(瓢)라고 하는 국자로 차와 차거품을 고르게 떠서 다완에 담아 차를 마시는데, 이렇게 찻물을 휘젓고 국자로 차와 차거품을 떠내기에도 역시나 낮고 널찍한 구조가 편리했을 것이다. 

송대에는 당대의 덩이차보다 정밀하고 섬세한 공정을 거쳐 만든 단차(團茶)가 유행하였다. 단차를 음용하는 방식은 점다법(點茶法)으로, 찻물을 끓이거나 끓인 찻물을 다완에 붓기 위해 옮겨 담는 용도로서 주전자 모양의 탕병(湯甁)을 사용하였다. 북송 황제 휘종(徽宗)이 그렸다고 전하는 〈당십팔학사도권(唐十八學士圖卷)〉이나 요금대 묘 벽화에 그려진 여러 〈비다도(備茶圖)〉, 남송대 유송년(劉松年)이 그린 〈연다도(봣茶圖)〉 등을 통해 점다의 과정에서 탕병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단차를 점다할 때에는 찻가루를 다완에 넣고, 탕병으로 끓인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수저(茶匙)나 다선(茶)으로 빠르게 휘저어 풍성하고 밀도 높은 거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격불(擊拂)을 한다. 점다법에서는 차 거품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정밀함이 요구되는 과정이었던 만큼 찻 가루를 넣은 다완에 끓인 물을 옮겨 부을 때에는 여러 번에 나누어서 적정량을 섬세하게 부어야 했다. 때문에 점다를 위한 탕병은 대개 손으로 잡기 편한 손잡이가 있었고, 물이 갑작스레 왈칵 쏟아지지 않아야 하므로 병처럼 늘씬하고 목이 긴 것이 선호되었다. 물이 나오는 주둥이 또한 짧지 않아야 물을 붓는 속도나 양을 조절하기 편리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길고 가느다란 곡선을 이루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단차의 조공을 금지(1391)함과 더불어, 명청대에는 산차(散茶)가 주류의 차종으로 자리하게 된다. 산차는 대개 물을 끓여서 주자 모양의 다관(茶罐)에 찻잎과 끓인 물을 부어 우려낸 후 찻잔에 따라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으로 음용한다. 차를 우려낼 물을 끓일 때에는 당대 자다법에서부터 사용된 낮고 널찍한 솥 형태의 다정이나 다복, 다요뿐 아니라 주전자처럼 생긴 탕관(湯罐)을 사용하였다. 탕관은 대개 배가 부풀어 있는 납작한 타원의 몸체에 짧은 주둥이를 지닌 주전자 모양이다. 명대 당인(唐寅)이 그린 〈투다도(鬪茶圖)〉에서 화로 위에 끓고 있는 탕관을 볼 수 있다. 

물을 끓이는 다구의 재질에 대해서는 당대 육우의 〈다경〉, 송대 채양(蔡襄)의 〈다록(茶錄)〉, 휘종의 〈대관다론(大觀茶論)〉, 명대 장원(張源)의 〈다록(茶錄)〉 등을 비롯하여 시대별 여러 다서에 기록되어 있다. 황금이나 은으로 만든 것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대개 철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지만, 도자기, 돌로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명·청대에 접어들면 찻잎을 물에 그대로 우려내는 포다법이 유행한 만큼 물의 역할이 전대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겨져 품수(品水)가 더욱 세분화되었고, 찻물을 끓이는 재료에 대한 구체적인 품평도 늘어난다. 

또한 차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탕법이 있었던 만큼, 각 탕법에는 사용하기에 적합한 온도가 있었다. 옛 사람들은 물을 끓일 때에 그 최적의 온도를 가늠하여 알맞은 순간에 차를 달였다. 물이 끓는 모습이 보이는 다정, 다복, 다요는 ‘게의 눈(蟹眼)’, ‘물고기의 눈(魚眼)’ 등으로 표현되는 물방울의 크기와 모양으로 물의 온도를 짐작했다. 그러나 주입구가 좁고 뚜껑이 있는 탕병이나 탕관은 물이 끓는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소리로서 물이 끓는 정도를 구분하였는데, 그 소리를 ‘소나무에 이는 바람소리(松風)’나 ‘계수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桂雨)’ 등에 빗대어 시적으로 묘사했다. 

섬세한 차 세계를 추구한 옛 사람들은 차를 끓이는 다구와 그 역할에 따라서도 차의 향과 맛이 달라진다고 여겼다. 때문에 찻물을 끓임에 ‘어떤 물을 길어서 사용하는가’ 뿐만 아니라, 그 물을 ‘어디에, 어떤 온도로 끓여서 사용해야 하는가’까지 깊이 고민하고 선별했다. 조선의 초의(草衣) 또한 〈동다송(東茶頌)〉에서 찻물을 끓이는 중정의 도(道)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언급하였다. 물을 끓이는 다구란 결국 이러한 도를 얻는 공간이니 그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3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