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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박동춘의 차 이야기] 10. 시대별 찻그릇에 대하여

  • 관리자
  • 2024-05-27   조회수 : 39

[박동춘의 차 이야기] 10. 시대별 찻그릇에 대하여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24.05.20 18:22

찻그릇, ‘차 담아냄의 미학’ 정수

​​​​​​​송대 흑유잔, 명청대 백자잔 선호
차 종류에 따라 찻그릇도 변화해

송나라 시기 만들어진 흑유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송나라 시기 만들어진 흑유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다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다. 차를 위한 수많은 과정의 결과를 오롯이 담아내는 찻그릇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시대에 따라 여러 재질과 형태로 제작되며 변화해왔고, 그 시대 차 문화의 특징과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찻그릇은 도자, 금속, 유리에서부터 목제 칠기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 소재로 제작되었으나 열전도 측면에서나 차의 색, 향, 미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단언 도자로 만든 것이었다. 
 
좋은 찻그릇에 대한 고찰은 이미 당대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에서 월주(越州)의 청자 다완을 옥과 얼음에 빗대어 최고라 칭하였고 은과 눈처럼 새하얀 형주(邢州)의 백자 다완은 이에 못 미친다 하였다. 차를 푸른 청자 다완에 담으면 고운 녹빛을 띠지만 하얀 백자에 담게 되면 붉은빛이 돌아 고유의 차색을 해치니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는 이 외에도 황색의 자기에 차를 담으면 자색이 돌고, 갈색의 자기에 담으면 차색이 검기 때문에 사용하기에 마땅치 않다고 평하였다.

이어 육우는 월주의 다완은 ‘구연의 입술은 말려 있지 않으며 바닥은 얕은 권족(卷足)을 지닌다’고 하였는데, 그의 기록처럼 이 시기의 다완은 대개 깊이가 얕고 측면이 구연까지 완만한 사직선을 이루며 곧게 벌어지는 형태였다. 이는 완에 담긴 차와 차 거품을 함께 마시기에 적절한 구조이다. 오늘날처럼 좁고 깊은 형태의 잔은 위에 뜬 거품이 먼저 입에 들어오고, 거품을 다 마시고 나야 아래의 차를 마실 수 있으니 차와 차 거품을 함께 마시기에 적절하지 않다. 당시에는 풍성한 거품이 좋은 차의 기준이었으므로 차와 차 거품을 함께 마시기 좋은 형태의 다완을 고안한 것이다.

송대에는 차의 떫은맛을 없애고 여리고 순한 맛을 얻기 위해 갓 돋은 새순을 취하고 고를 짜내어 차를 만들었으니 엽록소가 적게 함유되어 하얀 빛을 띠었다. 때문에 이 시기에는 차의 하얀 빛깔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대비감을 주는 검은 색의 다완을 선호했다. 채양(蔡襄)의 <다록(茶錄)>, 휘종(徽宗)의 <대관다론(大觀茶論)>, 심안노인(審安老人)의 <다구도찬(茶具圖贊)> 등 송대의 여러 다서에서는 건요(建盞)의 흑유잔을 최고로 손꼽았다. 

차색은 하얗기 때문에 마땅히 검은 잔(黑盞)이 좋다. 건안지역에서 만든 것은 감흑색에 문양은 가는 토끼털(兎毫)과 같고, 기벽이 약간 두툼하여 데워지면 쉽게 식지 않고 열감이 오래가기 때문에 쓰기에 가장 좋다. 다른 데서 생산된 것은 (기벽이) 얇거나, 자색이 돌아서 모두 (건안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 
-채양(蔡襄)의 <다록(茶錄)> 중에서


채양은 이 기록에서 건안의 흑유잔이 심미적이고 기능적인 면에서 차를 마시기에 얼마나 적합한지 논하고 있다. 건요의 흑유잔은 하얀 차색을 돋보이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서도 뛰어났다. 잔의 두께가 두툼하여 잔 내부의 온기를 오래 유지시키기 때문에 차가 빨리 식지 않도록 하면서도, 겉 표면은 지나치게 뜨겁지 않아 손으로 잡기에 편리했다.

또한 흑유잔은 당시의 음다(飮茶) 방식에 특화된 기형을 지니고 있었는데, 다완에 끓인 물과 찻가루를 넣고 다시(茶匙)나 다선(茶)으로 휘저어 거품을 내기에 유리하도록 기체가 깊어졌고 구연부에는 속구(束口)라 칭하는 오목한 홈을 둘러 격불(擊拂) 시 찻물이 넘치지 않도록 변화하였다. 

반면 명청대에는 백자 잔이 차를 마시기에 가장 좋은 찻그릇으로 애호되었다. 백자 찻그릇의 생산과 수요는 이미 오래 전부터 꾸준히 있어왔지만 당대에는 월주의 청자에, 송대에는 건요의 흑유잔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덩이차(甁茶)를 담기에는 녹빛의 차색을 붉게 만들고, 단차(團茶)를 담기에는 백색의 차색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덩이차를 분말로 갈아서 풍성한 거품이 피어나도록 휘저어 마시는 당·송대와 달리 명청대에는 제다(製茶)나 음다법(飮茶法)에서 전대와는 다른 양상을 띠었기 때문에 백자가 최고의 찻그릇으로 선호될 수 있었다. 

명청대에는 찻잎을 그대로 말리고 덖어서 차를 만들고, 다관(茶罐)에 끓인 물을 부어 찻잎을 우려낸 후 찻잔에 따라 마셨다. 그렇기 때문에 찻가루가 섞이지 않은 투명하고 맑은 차색을 감상하기에 새하얗고 깨끗한 백자가 가장 적합하였다. 명대 장원(張源)은 <다록(茶錄)>에서 다구로는 백자가 가장 좋다 하였고, 청대 초기에 편찬된 <단궤총서(檀叢書)>에는 좋은 차를 가리는 품다(品茶)를 할 때 백자 찻그릇을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백자 찻잔을 만들 때에는 구연부가 좁고 속이 깊어야 차색이 강렬하게 드러나고 향이 흩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우려낸 차의 색과 향을 살리기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차를 마심에 있어서 차의 색, 향, 미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하여 찻잎을 따는 것에서부터 차를 마시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과 요소들을 깊이 연구하고 섬세하게 가려 택하였다. 때문에 찻그릇은 어떤 차를 담아내느냐에 따라 시대별로 그 재질과 색, 형태를 달리하며 변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좋은 찻그릇을 가리는 기준은 언제나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차의 본질과 아취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심미성과 기능성을 갖추고 있는지, 찻잔을 잡거나 입에 닿을 때 편안한 재질과 형태인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3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