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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박동춘의 차 이야기] 12. 차 놀이에 대하여

  • 관리자
  • 2024-06-19   조회수 : 21

[박동춘의 차 이야기] 12. 차 놀이에 대하여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24.06.19 13:30

투다〈鬪茶〉, 차를 통한 풍류 보이다

차 즐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차 놀이’ 부상
송대 사찰서 ‘투다’ 유행… 탕법 우열 가려  

고려시대 유행했던 연고백차의 차 거품, 일명 다화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 유행했던 연고백차의 차 거품, 일명 다화라고도 하였다.

봄이 오면 차를 기다리는 애호가들은 기대감에 부푼다. 이는 새로 만든 햇차가 주는 맛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서다. 싱그러운 향기와 짜임새 있는 맛, 생기 발발한 차의 기세, 순수한 향, 맑고 시원한 향, 난향의 경쾌함 등은 좋은 차가 함의한 기미의 세계이다. 이는 차의 진수로, 차의 생명성이기 때문에 차를 만들거나 즐기는 이들이 명차의 조건으로 인식한다. 이런 명차를 만들기 위해 차의 산지 여러 곳에서는 곡우절(4월 20일경)이 오기를 기다린다. 곡우는 최적의 차를 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시기로, 명차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좋은 차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곡우를 전후하여 차 싹이 돋는 상태, 날씨, 인력 수급 등에 촉각을 세운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리 명차를 얻으려 하여도 이는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늘과 자연이 내주는 찻잎의 순수한 내면세계를 증기나 화력을 이용하여 갈무리할 뿐이다. 이런 원리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궁극적으로 좋은 차는 하늘이 내는 것이다. 아무리 차를 만들기 위한 준비가 완벽했다고 하더라도 차를 따는 시기에 비가 오거나 예기치 못하게 춥다든지 무더워지는 자연의 조건은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제다인은 겸허하고도 순선한 마음으로 좋은 차를 내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저 성의를 다해 자연이 길러낸 찻잎이 지닌 풍미를 자연스럽게 갈무리하는 것이 제다인의 마음 자세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예로부터 좋은 차는 가인(佳人)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 차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로향상을 도모하는 사람은 차를 가까이하였다. 이런 차의 진수를 최상으로 즐기기 위한 방법은 탕법으로 정의되지만, 삶의 여유에 놀이가 빠질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의 욕구는 차를 마시며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게 제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차 놀이의 향연이다.

이런 사례는 명나라 사람 하수방(1551~1635)의 〈다동(茶董)〉 ‘탕희(湯戱)’조에 소개한 바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차를 내면서 잔 표면에 사물의 형상을 환상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다장(차를 잘 내는 장인)의 신과 통하는 기예이다. 승려 복전은 차 다루기를 잘했는데, 탕을 (다완에) 부어 환상적인 사물의 모양을 완성했다. 시 한 구와 점다한 네 잔의 차는 함께 절구 시 한 수를 다탕(茶湯)의 표면에 드러낸 것이다. 복전의 제자가 날마다 그 문하에 나아가 (그가) 찻잔의 표면에 사물의 형상을 그리는 것을 배우고자 했다. 스스로 완성되자 시를 지어 말하길 찻잔 속에 물로 화려한 그림을 그리니 교묘한 그림, 배워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오히려 지금 육우를 비웃나니 차 다리기로 겨우 명성 얻기만을 좋아했구려.(饋茶而幻出物象於湯面者 茶匠通神之藝也 沙門福全長於茶海 能注湯幻 茶成 將詩一句並點四甌共一絕句 泛乎湯表 檀越日造其門 求觀湯戲 全自詠詩曰生成盞裏水丹青 巧畫工夫學不成 卻笑當年陸鴻漸 煎茶贏得好名聲)

윗글은 송대 사찰에서 유행했던 투다(鬪茶)의 규모와 풍모를 드러냈다. 이를 통해 승단의 풍류, 다시 말해 수행 여가를 차로 구현했던 차 문화의 유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런 사원차의 풍류는 명전(茗戰), 혹은 투다라고 하였다. 이는 문인에게 영향을 주어 차 문화의 결을 풍성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물론 이런 유형은 고려시대 사찰에서도 영향을 주어 다양한 차 유희를 즐겼을 것이라 짐작된다. 당시 사찰의 차 유희의 유형적 사례는 이연종이 지은 ‘박치암이 차를 보냈기에 감사를 표하며’라는 시에 “사미승 삼매의 날랜 솜씨로(沙彌自快三昧手) 찻잔 속에 새하얀 차 거품을 쉬지 않고 만드네(雪乳飜點不已)”라고 한 것에서 드러난다. 특히 사미승 삼매의 경쾌한 솜씨는 혹 복전 승려나 그의 제자가 만들어냈던 탕희와 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원래 탕희는 단차나 연고 백차가 유행하던 시기에 나타난 음다의 유형으로, 사찰에서 유행하여 문인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사원의 수행승 중에는 차의 기예에 출중한 승려도 있었다는 점에서 다장(茶匠), 혹은 신과 통하는 기예라는 용어가 생성되었을 것이다. 이는 수행의 여가를 차를 즐기는 방법으로, 승려들이 주도했던 차의 문희(文戱)요 다희(茶戱), 즉 차 놀이였던 셈이다. 

한편 차의 우열을 겨루는 탕사(湯社)라는 놀이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다동〉‘탕사’조에 소개된 내용에서 드러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대 때 노공 화응의 자는 성적이다. 같은 반열에 있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번갈아가며 서로 차를 마셨는데, 차 맛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벌을 내렸다. 이를 탕사라고 불렀다(五代時 魯公和凝 字成績 率同列遞日以茶相,味劣者有罰 號湯社)

오대는 오대십국 시기로, 당나라가 멸망한 후 907년~979년경을 말한다. 이 무렵 중국의 차 문화는 전역으로 확산되어, 차를 만드는 방법에도 덩이차(餠茶)보다 더욱더 섬세한 공정 과정이 추가되었던 단차의 출현 시기이다. 당시 관료들은 서로 차를 끓여 그 우열을 가리는 놀이가 유행되었으며, 이에 따른 상벌을 정하는 등 차를 통한 놀이의 형태도 매우 세분화되었다는 점이다. 

 

출처 :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