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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박동춘의 차 이야기] 14. 좋은 찻물을 위해서

  • 관리자
  • 2024-07-17   조회수 : 61

[박동춘의 차 이야기] 14. 좋은 찻물을 위해서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24.07.15 17:53

‘명천〈茗泉〉’ 위해 선현은 노력 아끼지 않았다

“물은 차의 근본”… ‘속다경’에 찻물 공수 노력 확인
생수 보편화된 현대엔 좋은 찻물 얻기 매우 어려워

명나라 시기 문징명이 그린 ‘품다도’.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명나라 시기 문징명이 그린 ‘품다도’.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차를 다루는 일은 긴장된 마음을 이완시키는 오묘한 작용이 있다. 요즈음처럼 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에는 따뜻하고 싱그러운 녹차가 주는 위로가 큰 힘이 된다. 이런 차를 즐기기 위해서는 물이 가장 중요하여, 초의 선사도 〈동다송〉에서 “물은 차의 근본(體)”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기에 산간(山間)에 살면서 명천(茗泉)을 언제든지 얻을 수 있다면, 차의 기미(氣味)를 즐길 수 있는 제일 조건을 구비한 것이므로, 예나 지금이나 차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명천을 구할 수 있는 청복(淸福)을 소망하는 것이리라. 

얼마 전 청나라 초기 인물 육정찬(陸廷燦)이 편찬한 〈속다경(續茶經)〉을 읽다가 옛사람들이 좋은 물을 얻는 방법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이 하도 진지하고 자세하여 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속다경〉을 편찬한 육정찬은 어떤 인물인가. 그의 생몰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청나라 초기의 인물로, 강소 가정 출신으로 알려진다. 그의 호는 만정(亭), 추소(秋昭)라는 자를 썼으며 시문에 능했다. 평소 차를 매우 사랑하여 세상에서 ‘다선(茶仙)’으로 칭송됐다. 그가 편찬한 〈속다경〉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당(盛唐) 때 육우(陸羽)가 저술한 〈다경〉의 체재를 모방해 구성했다. 육우의 〈다경〉이 중국 차 문화의 맹아기로부터 당 중기까지 차와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것이라면, 〈속다경〉은 당 중기로부터 청초(淸初)까지 차에 관련된 문헌을 집대성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속다경〉은 중국 차 문화 전반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차 문헌이라고 하겠다. 

이 자료에 근거하여 옛사람들이 명천을 얻는 방법을 살펴보니 〈속다경〉의 ‘송우재의 물을 운송하는 약조(松雨齋 運泉約)’에 자세한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혜산천의 물 운송은 물 단지마다 뱃삯과 인력 비용을 은(銀) 3분으로 상환한다. 물 단지, 물동이 값과 물동이는 대개 자신이 준비하므로 계산하지 않는다. 물이 도착하면 각 벗에게 급히 알려 사람들이 스스로 가져가게 한다. 매달 상순(10일경)에 은전을(비용을) 거두고 중순(20일경)에 물을 운송한다. 매달 한번 물을 가져오면 맑고 새로운 물을 가져올 수 있다.(運恵水每罈償舟力費銀三分水罈罈價及罈 盖自備不計水至走報各友 令人自擡 毎月上旬歛銀 中旬運水 月運一次 以致清新)
 
윗글의 송우재는 명대의 문인 이일화(李日華, 1565~1635)의 당호로 짐작된다. 그의 품다와 품천(品泉)에 관한 견해는 〈죽란다형(竹茶衡)〉에 자세히 서술했다. 그러므로 그는 찻물의 중요성을 알고 혜산천(惠山泉)을 가져와 신선한 샘물을 공급하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물을 공수하기 위해 필요한 물동이를 각자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물 운송비용은 뱃삯과 물을 운송하는 인력 등으로 제한하여 각각 은(銀) 3분을 각출했다. 물이 도착하면 각자에게 빨리 통보하여 가져가게 했다. 이 또한 물 운송의 이동 속도를 고려하여 신선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이며 다른 한편으론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물 운송 약조에는 매월 초에 돈을 거두고 중순에 물을 운송하여 매달 한번 정도 가져오면, 언제나 신선하고 맑은 찻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한 조치라 하겠다. 이밖에도 물을 원하는 자는 (약조) 책 한쪽에 물동이 숫자를 쓰고 편의대로 약조를 써둔 책에 기록하여 물동이 숫자에 따라 은전을 맡기는 등 서로 간에 필요한 물동이 개수를 정확하게 남기도록 했다(願者 書號於左 以便登冊 開數 如數付銀). 그가 인식한 차의 가치는 바로 삭막한 마음에 윤기를 더하며 막히고 답답한 것을 씻어낸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명천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液瀝易枯 滌滯洗蒙 茗泉不廢) 

결국 명차에는 좋은 차에 걸맞은 물을 만나야 신선의 경지에 올라갈 수 있는 차의 공력을 얻어, 마침내 물외(物外)를 소요하는 것과 견줄 수 있는 경지를 경험하게 된다. 결국 차를 즐기는 일이나 명산을 주유하는 일은 풍진 세상을 멀리할 수 있는 뗏목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차는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유용한 정신음료이다. 그러므로 현대인도 차를 즐기며 유통되는 생수를 쉽게 선택한다. 실제 생수의 선택 폭은 넓고도 다양하다. 

그러나 차에 알맞은 물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다. 왜냐하면 신선한 물을 구하기에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생수가 오래된 물이기 때문이다. 대개 유통 생수는 채수한 후 15일에서 1개월이 지난 것이거나 심한 경우엔 2~5개월이 지난 생수가 유통된다. 그러므로 샘물을 떠 용기에 담은 후 대략 2~3일 만에 공수될 수 있었던 명대나 송나라, 고려 시대나 조선 전 후기에 비해 신선한 물을 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므로 어쩌다가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난 차에 알맞은 샘물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청복(淸福) 중에 청복이라 하겠다. 더구나 물을 보관할 수 있는 물동이는 천연 소재이지만 현대에 유통되는 물통은 플라스틱 소재이다. 편리할 수는 있지만, 싱그러운 물의 정기를 보존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맑고 기세 좋은 물을 얻을 수 있는 묘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자신이 이런 물을 감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 가장 좋다. 아니면 좋은 물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인데, 이는 도시에서도 오묘한 차의 청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라 하겠다.

 

출처 :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