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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박동춘의 차 이야기] 15. 최적의 차 보관법은

  • 관리자
  • 2024-07-30   조회수 : 44

[박동춘의 차 이야기] 15. 최적의 차 보관법은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24.07.26 14:55

선인들은 차를 어떻게 보관했을까

당대엔 종이봉투 넣어 보관
송대 ‘장다’ 개념이 탄생해
조선代 도자기 보관 보편화 

명나라 문인 당인의 ‘품다도’. 도쿄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명나라 문인 당인의 ‘품다도’. 도쿄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요즘처럼 비가 잦은 계절이 되면 쾌적한 환경이 그리워진다. 차는 무덥고 습한 장마철을 견딜 에너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좋고 나쁨이 공존하는 것은 자연의 원리이니 습기가 많은 여름엔 차의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비가 내릴 때 차를 꺼내면 차에 습기가 침투할 수 있다. 만약 차에 습기와 다른 향이 들어가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일순간에 마실 수 없는 차로 전락한다. 왜 그런가. 이는 접물성이 강한 차의 속성 때문에 다른 향이나 습기를 잘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인들은 진기(珍奇)한 차에 한 번이라도 습기나 나쁜 향이 스며들면 한 순간에 차의 진기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터득했던 것이다. 

한편 사람들이 차를 좋아하는 연유는 심신을 평탄하게 조절해 주는 차의 효능 때문이다. 이는 차의 내적인 요소인 기운과 외적 요소인 향기, 맛, 색 등의 작용에 따른 결과이다. 차에서 보존해야 할 요소는 색과 향기, 맛, 기운이다. 이런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면 차는 감미롭고 기운도 활발한 차가 되니 이런 차를 마시면 힘이 나고 마음이 즐거워진다. 이런 차의 덕성을 터득했던 선인들은 이를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으니 이는 고금의 다서(茶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다사(茶事)의 핵심은 제다와 탕법, 그리고 차 보관법, 다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의 보관법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던 것일까. 이에 대해 논의해 보면, 차 문화를 집대성한 육우는 〈다경〉‘사지기(四之器)’장에서 “종이 봉지, 희고 두꺼운 섬등지를 겹으로 꿰매서 구운 차를 보관하여 차향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였다.(紙囊 以剡藤紙白厚者 夾縫之 以貯所灸茶 使不泄其香也)”라고 하였다. 이는 중당 시기에 차 보관을 어떻게 했는지를 드러낸다. 결국 8세기의 차 보관법은 막 구워낸 차의 향기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조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덩이차(餠茶)를 약한 불에 구운 후 가루로 만들어, 이를 끓인 물에 넣는 자다법(煮茶法)이 유행했다. 그러므로 구운 차의 향기가 새어나가거나 다른 향기와 습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종이봉투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는 초기 차 보존법의 언급으로, 차의 정유(精: 차의 풍부한 맛과 향기·기운)가 새어나가지 않게 한 조치였다. 

육우가 말한 차의 보관법은 종이봉투에 잠시 넣어 둔 것이며, 이때 사용한 종이는 섬현에서 생산된 종이였다. 섬현은 바로 당대의 지명이며, 현재 절강성(浙江省) 승현(騷縣) 지역이다. 

차의 보관법이 장다(藏茶)라는 용어로 정의된 것은 송대(宋代)이다. 앞 시대인 당대에는 구운 차를 잠시 동안 섬등지 종이봉투에 보관하였지만, 송대는 장다라는 용어를 구체화하였다. 이는 장다가 방법, 조건 등 차를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개량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오묘한 차의 향기, 맛, 기운을 장기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이론화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장다, 즉 차 보관법의 이론화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 자료는 무엇일까. 이는 1075년경 황유(黃儒)가 〈품다요록(品茶要錄)〉을 저술한 이후 증보한〈품다요록보(品茶要錄補)〉‘향기를 두려워하며 (차를 보관하기) 따뜻한 곳이 마땅하다(畏香宜溫)’장에서 확인된다. 

그런데 황유의 자료는 채양(蔡襄, 1012~1067)의 〈다록(茶錄)〉‘장다(藏茶)’를 인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장다의 개념은 채양에 의해 정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채양이 말한 〈장다〉의 개념과 목적은 무엇일까. 그의 〈다록〉 ‘장다’의 내용을 살펴보자.
 
차는 조리대 잎이 마땅하니 향을 두려워해서다. (차는) 따뜻하고 건조한 것을 좋아하고 습하고 찬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차를 보관하는 사람은 조리대 잎으로 다육의 입구를 싸서 봉하여 일차 2~3일 경이 지난 후 숯불을 이용하여 항상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하게 하면 습기를 막을 수 있다. 만약 숯불이 너무 뜨거우면 차가 타서 먹을 수가 없게 된다.
(茶宜箬葉而畏香藥喜溫燥而忌濕冷故收藏之家以箬葉封裹入焙中兩三日一次用火常如人體溫溫則御濕潤若火多則茶焦不可食)

그가 말한 장다, 다시 말해 차 보관의 목적은 습기가 차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습기가 스며들면 차의 정기가 사라져 먹을 수 없는 차가 된다고 보았다. 차의 오묘한 맛과 기세가 습기로 인해 사라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인식했던 것이다. 그가 말한 장다의 조건은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한 곳에서 차를 보관하는 것이다. 바로 차는 따뜻하고 건조한 것을 좋아하는 속성이 있기에 이런 조건에서 차를 보관하여야 차의 진수가 사라지지 않아 오랫동안 오묘한 차의 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송대는 단차가 유행했던 시기로, 다육(茶育)에서 차를 보관하였다. 다육은 당대부터 활용하던 것인데, 송대에서도 차를 보관하는 장소로 유용하게 사용했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차의 정유를 보존할 뿐 아니라 차의 정기를 증강시키는 장소로 사용된 것이다. 이어 명, 청 시대에도 장다의 중요성은 강조되었다. 하지만 차를 보관하는 방법이 변화되었는데, 이는 도자기에 차를 보관하는 등, 차 보관에 필요한 용구에 변화를 보였다는 점이다.  

고려시대 장다는 송나라와 동일한 조건이 요구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고려의 차 보관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문헌 자료는 드물다. 다만 조선시대의 차 보관은 도자기에 넣어 두는 방법이 보편화되었던 정황이 드러난다. 이런 사실은 신위(1769~1845)의 ‘남다시병서(南茶詩幷序)’에 “초사 이산중이 (초의차) 얻어 강옥의 금령 박영보(1808~1872)에게 보내니 (차를)봉한 백자항아리에는 녹설아라 썼네(苕士得之奇江屋 白封題綠雪芽)”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출처: (현대불교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