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4.08.20 10:59
숲 속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처럼 싱그럽고도 경쾌한 차의 풍미는 풍진 세상을 견디게 하는 위안의 산물이다. 이런 차의 가치를 노래한 문인들은 많지만 특히 9세기 당나라 인물 노동(盧仝, 795~835)은 차를 통해 고상한 삶을 구현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시의 기풍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삶이 공허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챘던 그였기에 숭산(嵩山)의 소실산(少室山)에 숨어 살며 세상살이에 곁눈질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출중했던 그의 시풍(詩風)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그 기인함을 칭송하여 ‘노동체(盧仝體)라고 칭송되었다. 당송 8대가 중에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한유(韓愈, 768~824)가 노동의 시체(詩體)를 숭상했으니 노동의 천재성은 이미 당대 대표적인 문장가에게 검증된 것이라 하겠다.
아무튼 산림에 은거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던 그는 차를 즐긴 인물로, 그의 벗 맹 간의대부가 귀하디귀한 차를 보내왔기에 감사의 정을 시로 드러낸 것이 바로 ‘맹 간의대부가 햇차를 보냈기에 마음 가는 대로 붓을 들어 감사를 표하며(走筆謝孟諫議寄新茶)’이다. 이 다시는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 차를 즐기는 이들이 차의 오묘한 진수를 파악할 수 있는 규범이었다. 그러므로 후일 차를 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차의 공덕이 무엇이며 차가 사람에게 주는 이로움을 총체적으로 정의를 노동의 시 한 편에서 얻었으니 이런 그의 공덕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과 비견됐다.
차 문화를 집대성한 육우의 공덕은 특히 제다와 탕법을 바로 세운 것이며, 이로부터 본격적인 차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에 못지않은 공덕으로 노동의 시는 차의 가치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평가된다. 이들의 공덕은 후대에도 길이 차의 가치를 칭송할 단초를 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차의 오묘한 세계를 드러낼 수 있는 조건은 누누이 언급했던 바와 같이 좋은 차를 얻는 일이며 차의 품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물이 있어야 한다. 이런 차의 원리를 터득했던 노동이기에 그 또한 좋은 물을 찾았던 흔적이 〈속다경〉의 지문 중에 보인다. 바로 “왕옥산(王屋山)에 대한 내용을 〈통지(通志)〉에서 살펴보니 옥천은 농수 위에 있는데, 노동이 여기에서 차를 다렸다(王屋山按通志 玉泉在瀧水上 盧仝煎茶於此)”라고 한 대목이 그것이다. 옥천은 좋은 물로, 차의 진수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샘물을 말한다.
그렇다면 당대의 대표적인 다인이었던 노동은 〈다가〉에서는 차의 어떤 가치와 효능을 드러낸 것일까. 맹 간의대부는 노동과 어떤 친분을 나눈 사이였을까. 그의 〈다가〉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먼저, 노동은 한낮까지 잠을 잘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바로 관직이나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일이 없었던 산림처사이다. 그의 고상한 인품과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뛰어난 글 솜씨로 당시 그를 흠모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간의대부였던 맹 씨와도 깊은 우정을 나눴을 것이다. 맹 간의대부는 황제의 언로를 맡은 높은 관리로, 황제가 즐겼던 좋은 차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귀한 차를 노동에게 보냈을 터인데, 이는 월단차 300편을 편지와 함께 보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물론 높은 관직에 있었던 간의대부가 보낸 차이기에 포장 또한 특별하여 흰 비단으로 포장한 후 세 줄로 도장이 찍어 귀중한 물품임을 상징하였다. 더구나 이 차는 황제가 마신 후 그 나머지는 왕공에게 합당한 차이거늘 무슨 일로 산속의 사람에게 이르렀는가라고 한 대목은 그 자체가 노동의 감격을 일언으로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한편, 맹 간의대부가 보낸 편지를 개봉한 노동의 마음은 간의대부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 듯했다고 하니 얼마나 간절하게 소통하는 벗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신분과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는 사이지만, 항상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시공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눈 지기(知己)이었다.
더구나 그의 〈다가〉는 9세기 무렵 서로 뜻이 통하는 벗에게 전하는 마음의 선물 중에 차만 한 것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무엇 때문일까. 바로 차는 사람의 심신을 정화하여 고르지 못한 몸과 마음을 평정하게 만들어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정신음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의 〈다가〉에는 차를 마신 후에 몸과 마음의 변화를 어떻게 느꼈던 것일까. 차를 마신 후 시차마다 변화하는 몸과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첫 모금을 마시자 입안이 윤택해지고(一碗喉吻潤), 두 번째 모금을 마시자 쓸쓸한 번민이 사라지게 하네.(二碗破孤悶) 세 번째 모금을 마시니 삭막한 마음을 더듬어 오직 오천 권의 문자가 살아나네.(三碗搜枯腸 惟有文字五千卷) 네 번째 모금은 가볍게 땀이 나면서 평소에 불편했던 일이 모두 털구멍으로 사라지네.(四碗發輕汗 平生不平事 盡向毛孔散), 다섯째 모금에서는 기골이 맑아지고(五碗肌骨淸), 여섯 모금 째에는 신령한 신선과 통하며(六碗通仙靈), 일곱 번째 모금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두 겨드랑이 사이로 스물스물 맑은 바람이 이는 것을 알겠네.(七碗喫不得也 唯覺兩腋習習淸風生)
위 내용은 차를 마신 후의 몸과 마음의 변화된 정황을 가장 상세하게 드러낸 것인데, 그의 시에서 묘사한 차의 진수에 대한 정의는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 차를 마시는 연유는 근심과 걱정이 사라져 순수한 몸과 마음 상태로 돌아가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차가 이런 경지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잘 만들어진 차의 조건을 갖춰야만 느낄 수 있는 차의 경지이다.
그러나 좋은 차와 물, 숯불과 찻그릇 등이 잘 구비됐다 할지라도 차를 다루는 사람의 인품과 통찰력이 차의 진수가 잘 드러난 차탕을 만들어 낸다. 진정 차의 오묘한 세계는 차를 만들고 다루는 사람의 덕이 함께 드러낸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조건이라 하겠다.
출처: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5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