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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박동춘의 차 이야기] 제20회 차는 하루에 얼마나 마셔야 할까

  • 관리자
  • 2024-10-29   조회수 : 42

[박동춘의 차 이야기] 제20회 차는 하루에 얼마나 마셔야 할까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24.10.25 12:08

차도 음식… 과하면 해롭다

차의 양 등은 茶人 지킬 핵심사항
明代 주문보, 하루 6번 차를 마셔
차 이로움 만끽하며 85세까지 장수

좋은 차 잎은 차의 진정한 맛과 향색의 토대가 된다.
좋은 차 잎은 차의 진정한 맛과 향색의 토대가 된다.

차 마시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이때가 되면 물의 기세도 맑고 활기가 있어 온전한 차 맛과 향기, 기운을 드러낼 최적의 상태가 된다. 차의 정수를 즐길 수 있기에 차 모임도 활발해진다. 특히 사계절에 따라 차의 맛과 향, 기운이 변화무쌍한 풍미는 드러낸다는 점에서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차의 오묘한 세계를 즐길 수 있다.

예로부터 차는 소쇄하고 담박한 본성을 지녔기에 세속적이거나 사치한 사람보다는 검박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정신 음료로 인식되어 왔다. 이는 차의 특성상 맑고 바른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가 아무리 사람에게 유용할지라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인가하는 문제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특히 차의 신묘한 세계는 그 조건이 충족될 때 차는 자신의 기량을 다 펴내는 특성이 있어서, 좋은 차와 물, 물을 끓이는 정도, 다구 등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특히 마시는 차의 양의 조절 능력은 차의 이로움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법에 핵심이 된다.

결국 차는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마시면 해롭다는 것이다. 과다한 차의 양, 농도의 적절성은 차를 즐기는 이들이 꼭 알고 지켜야할 핵심 사항이라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차의 해로움을 지적한 것은 당나라 사람 기무경(朞毋㷡)이다. 그에 대해 당나라 유숙(劉肅)의 <대당신어(大唐新語)>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우보궐 기무경의 성품은 차를 마시지 않았다. 그가 저술한 <다음서(茶飮序)>에서 (차가)막힌 것을 풀어주고 뚫어 주는 것은 잠시의 이로움이 잠깐은 좋지만, 기를 수척하게 하고 정기를 범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해가 되는 것이 크다고 하였다.(大唐新語言 右補闕朞毋㷡 性不飮茶 著茶飮序曰 釋滯消壅 一日之利暫佳 瘠氣侵精 終身之害斯大)

위 인용문에서 차를 마시면 사람의 정기와 가운을 쇠락시킬 수 있다는 기무경의 견해는 당대(唐代) 사람의 차에 대한 인식인데, 이는 차가 음성 식물이므로 냉한 성질을 지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차와 생강을 함께 끓이는 탕법이 있었던 것은 차의 냉기를 중화하기 위함 것이다. 8세기 육우(陸羽)가 제다법과 탕법을 정립한 이후 차의 냉기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되어 차에 소금을 넣는 탕법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차를 찌거나 덖을 때 불의 정도를 조절하여 차 싹을 잘 익히는 방법이 정밀해졌고, 뜨거운 물에 차를 다리는 탕법이 보편화되면서 차의 냉기가 점차 극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명나라 사람 문용(聞龍 1551~1631)은 차를 즐기는 회수(回數)를 정하는 것이 차를 즐기는 묘수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그의 <다전(茶箋)>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소동파(소식)이 말하기를 채군모는 차를 좋아했지만, 늙고 병들어 (차를)마실 수가 없게 되자 어느 날 차를 끓이고 완상하였다라고 하니 후인이 웃음 지을 만 하다. 누가 천년 후에 같은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내가 일찍이 지은 시에서 이르기를 나이가 들면 탐심이 더욱 심해지는데 비위가 차져 양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차를 끓여 두고 완상만 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이에 오랜 벗 주문보를 생각해 보니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찻잔과 화로에 불 피는 것을 어는 때라도 잠시 폐한 적이 없었다. 차를 마시는 날은 정기적으로 정해 두었으니 새벽이 밝아올 때, 저녁을 먹은 후, 오전 10시경, 오후 4시 전후, 해가 질 때, 황혼, 등 무릇 여섯 차례에 차를 마신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차를 끓이지만 (나는 차를)함께 마시지 않았다. (그의)나이는 85세인데도 병이 없이 마쳤다. 묵은 청복을 심은 것이 아니면, 어찌 온 세상에서 편안하게 누릴 수 있었겠는가. 좋은 것을 보고도 마실 수 없는 사람은 얻은 것이 이미 많았던 것이 아닐까.(東坡云:蔡君謨嗜茶,老病不能飲,日烹而玩之。可發來者之一笑也。孰知千載之下有同病焉。余嘗有詩云:年老耽彌甚,脾寒量不勝。去烹而玩之者,幾希矣。因憶老友周文甫,自少至老,茗碗熏爐,無時踅廢。飲茶日有定期:旦明、晏食、禺中、晡時、下舂、黃昏,凡六舉。而客至烹點,不與焉。壽八十五,無疾而卒。非宿植清福,烏能舉世安享。視好而不能飲者,所得不既多乎)

문용은 절강 은현(浙江 鄞縣) 사람으로 권문세가였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던 은사(隱士)로 평생을 보냈다. 특히 시문에 능했던 다인으로, 1630년경 <다전>을 저술하여 명대의 차 문화를 연구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문헌을 남겼다.

윗글에 인용된 주문보는 문용의 오랜 벗이라 한 것으로 보아 만명(晩明)시대 문인으로 차를 즐긴 인물로 추정된다. 그의 차 생활에서 주목할 부분은 하루에 차를 즐기는 횟수를 정해 두고 차를 즐겼다는 점이다.

이는 차를 마시는 양을 조절하여 너무 과다한 양의 차를 마시지 않았는데, 그가 차를 즐긴 시간은 새벽,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오전 10시경, 오후 4시경, 해가 질 때, 황혼 등 여섯 차례이다. 특히 문용이 주목한 내용은 바로 자신의 오랜 벗 주문보가 늘 차를 즐겼지만, 절제된 음다(飮茶)를 통해 차의 이로움을 만끽하여 85세까지 살면서 심신이 병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 셈이다.

특히 주문보가 자신의 음다 생활의 준직을 지키기 위한 절제로, 손님이 오면 차를 대접하지만 자신은 자신이 정한 원칙을 고수했다는 점인데, 이는 현대 차를 즐기는 이들이 주목해야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출처: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6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