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4.11.18 13:49
늦가을 승주의 차밭에는 차 꽃이 분방한 향기를 드날리고 있을 것이다. 이 꽃을 통해 고상하고 아름다워 차의 품색을 짐작하게 한다. 더구나 차는 사람을 이롭게 한 영초(靈草)라 여겼는데,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의 〈본초강목〉에 “(차의)기미는 쓰고 달며 미한한데 독이 없다. 차는 쓰고 냉하므로 음중에 음이다(氣味苦甘 微寒無毒 茶苦而寒 陰中之陰)”라고 하였다.
쓰고 냉한 차의 기질은 상기된 기운을 내리고 흩어진 기운을 거두어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장점이 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차의 이로움을 삶에 활용했던 사람들은 삶에 여유와 담박한 삶의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차를 곁에 두고 즐겼으니 이 흔적들은 바로 시대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차문화의 흐름을 형성하게 만든 요인이다. 어찌 보면, 차의 약리적 효능을 수행과 양생에 응용했던 것인데, 이 바탕에는 차가 병을 치료하는 약의 개념이었음을 드러낸다.
간혹 차와 다른 약재를 섞어 두통, 기허(氣虛), 설사를 치료하거나 소변, 대변이 원활하지 않을 때 이를 원활하게 해결하는 방법으로 활용된 사례가 많았다. 이런 차의 응용법은 특히 심신이 극도의 긴장 속에 노출된 현대인들의 삶을 여유롭게 할 수 있는 매개물로써 그 활용폭이 넓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대인들이 겪는 변비, 두통, 기허, 설사 등은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책으로, 적극적인 활용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차를 매개물로 현대인이 겪는 여러 가지 질병 중에 설사, 두통, 기허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안은 명대 왕상진(王象晉, 1561~1653)이 편찬한 〈군방보(群芳譜)〉 ‘뇨치방(療治方)’에서 제시된 것이 요긴한 정보라 여겨진다. 그의 기허와 두통 치료 방법을 살펴보면, 이렇다.
기가 허약하고 두통이 있을 때 이른 봄에 만든 차를 가루로 만들어 (이를 잘)개서 고(膏)를 만들어 토기 잔에 넣고 돌리면서 파두 씨 40알을 일차로 태워서 그 연기를 (차고(茶膏)에)훈증하여 말린다. (이를)가루를 내어 매번 한 스푼 복용하고, 별도로 좋은 차 가루를 넣어 식후에 다려 마시면 효과가 있다(療治方 氣虛頭痛 用上春茶末 調成膏 置瓦盞內覆轉 以巴豆四十粒 作一次燒 煙燻之 乾乳細 每服一匙 別入好茶末 食後煎服 立效)
윗글에 의하면, 기가 허약해졌을 때 이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이른 봄에 만든 좋은 차를 가루로 만든 후 (물로)개어 고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고를 질그릇이나 토기(土器)에 넣고 뒤집어 돌리면서 파두 씨 40알을 태운 연기로 훈증한 다음 (차고를) 말린다.
이렇게 만든 차를 가루로 만들어 매번 한 스푼씩 복용하면 효과가 있고, 별도로 좋은 차를 넣어 식후에 다려 마시면 효과가 드러난다고 하였다. 특히 파두씨를 태워 그 연기에 차고를 훈증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밖에도 설사를 치료하는 법과 소변이나 대변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 차와 생깨를 활용하는 방법도 〈군방보(群芳譜)〉 ‘뇨치방(療治方)’에 다음과 같이 언급해 두었다.
붉고 흰 설사에는 좋은 차 한 근을 구운 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진하게 다려 한두 잔을 마시면 오래된 설사에도 좋다. 또 소변과 대변이 원활하게 나오지 않은 때 좋은 차와 생 깨 한 줌을 잘 씹어 먹으면 소변과 대변이 잘 내려간다. 여러 차례 차와 생 깨를 씹어 먹으면 효과가 나는데, 차와 생 깨가 모두 씹히지 않았는데도 대소변이 잘 내려간다. (又赤白痢下 以好茶一斤 灸搗爲末 濃煎一二盞服 久痢亦宜 又二便不通 好茶生芝各一撮 細嚼 滾水沖下卽通 屢試入效 如嚼不及爛 滾水送下)
그가 언급한 설사에 유용한 차의 활용법은 차를 구워 쌓아서 가루를 만들어 진하게 다려 한두 잔 마시라는 처방이다. 이때 차의 온도는 뜨거운 상태에서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차가 이뇨작용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혹자는 차를 마시면 자주 화장실을 가는 것이 꺼려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차는 설사가 날 때 진하게 다려 마시면 효과가 있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차를 구워 가루차를 만들어 사용한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차를 이용하여 병을 치료하는 사례가 있다. 임진왜란과 호란을 겪은 이후 차 문화가 쇠락했던 시기에 차가 나던 산지에서는 늦게 딴 차를 그늘에 말렸다가 돌배와 생강, 혹은 귤피 등을 섞어 감기와 이질을 치료하는 단방약으로 사용한 것이 그것이다.
조선 후기 이운해(1710~?)의 〈부풍향다보〉는 상차 7종을 만들어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 문헌은 1755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까지 원본이 발굴되지 않았다가 황윤석(1729~1791)의 〈이재난고〉에 수록된 〈부풍향다보〉가 발굴되었는데, 여기에는 약차를 다리는 도구와 풍로, 물의 양 등을 제시한 그림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활용법이 드러난 사례라 하겠다.
그럼 〈부풍향다보〉에서 병을 치료하는데 요긴한 7종 상차를 만들어, 풍과 추울 때, 더울 때, 열이 날 때, 감기, 기침, 체했을 때 등 7가지 이상 병의 증세가 있을 때 이를 완화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7종의 상차는 차와 다른 약재를 혼용하여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그 대략을 살펴보면 △첫째 풍을 맞았을 때는 감국, 창이자(風 甘菊 蒼耳子)를 넣어 국향차(菊香茶)을 만들고, △둘째 추울 때는 계피, 회향(寒 桂皮茴香)을 넣어 계향차(桂香茶)만든다. △셋째 더울 때 백목단, 오매 (暑 白檀香烏梅)으로 매향차(梅香茶)를 만들고, △넷째 열날 때는 황련, 용뇌(熱 黃連 龍腦)로 연향차(連香茶)를 △다섯째, 감기에는 향유, 곽향(感 香 藿香)으로 유향차(貧香茶)를 △여섯째 기침에는 상백피, 귤피(嗽 桑白皮 橘皮)로 귤향차(橘香茶)를 △일곱째 체했을 때 자단향, 산사육(滯 紫檀香·山査肉)으로 사향차(査香茶)를 만든다고 하였다.
출처: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6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