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불뉴스
- 승인 2024.12.18 10:38
초의 선사(草衣 禪師, 1786~1866)는 대흥사에 전해진 선차를 이어 발전시켜 차 문화를 중흥했다. 이런 공로는 그를 한국의 다성(茶聖)이라고 칭송한 이유로, 당나라 육우(陸羽)가 차문화에 끼친 공적과 비견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차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는 좋은 차를 생산할 수 있는 인적 인프라 구축 및 생산 기반의 확충에 달렸다. 이외에도 차 문화의 질적 수준은 바로 차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사상과 미적 감수성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화 흐름의 변천 과정에서 본다면, 조선 후기 차문화가 일시적인 중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동력은 초의에 의해 좋은 차가 생산될 수 있었고, 이를 향유한 문인들의 문예적인 취향이 높았다는 점에서 기인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초의선사와 교유했던 경화사족들은 그를 ‘전다박사’라 칭송하여 그의 차에 대한 식견과 초의차의 품색을 높게 인정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차에 대한 연구는 대략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는 대략 1830년경 〈다신전〉을 편찬한 이후 본격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가 밝혔듯이 〈다신전〉의 편찬이 수홍 사미가 다도를 알고자 했으며, 총림에는 조주의 끽다 전통이 있었지만 다도를 모른다는 점에서 구체화된 것이며, 당시 대흥사 승려 사이에서 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사원 차의 품질 개선을 위해 명대에 유행했던 잎차의 제다법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청대에 보편화된 차의 종류가 잎차였던 것도 고려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렵 대흥사 사중에서는 덩이차(병차)와 잎차를 함께 만든 경향을 보였고, 초의선사의 제다는 제다법의 이론적 완성과 제다가 숙련됨에 따라 좋은 잎차를 만드는 것에 주력하였다. 그의 제다 완성도는 1842년경에야 다삼매(茶三昧)의 경지를 드러낸 차를 완성하였는데, 대략 1838년경 만든 그의 잎차의 품질은 추사 김정희에 의해 다음과 같이 평가되었다.
나에게 보낸 차의 품질은 심폐가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만큼 좋지만, 매번 차를 덖는 방법이 조금은 지나쳐서 차의 정기가 사그라진 듯합니다. 만약 다시 만든다면 (차를 덖을 때) 불의 온도에 주의하심이 어떨지요(茶品荷此存 甚覺醒肺 每炒法稍過 精氣有銷沈之意 若更再製 輒戒火候 如何如何)
1838년은 초의가 〈다신전〉을 편찬한 지 8년이 지난 후로 그가 어떤 차를 만들기에 주력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추사는 초의가 만든 차를 “덖는 법(炒法)”이라고 한 점이 눈에 띈다. 초법이란 바로 뜨거운 무쇠 솥에서 찻잎을 덖어내는 산차 제다법이다. 당시 초의는 〈동다송〉을 저술한 지 한 해를 보낸 시기이지만, 차를 덖을 때 불의 강약 조절에 미숙함을 드러내 정기가 사라진 차를 만들었다는 것이 추사의 평가이다.
그렇다면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품질이 우수한 차는 좋은 찻잎을 얻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다음의 조건은 화후의 문제이다. 바로 차를 덖거나 말릴 때의 불의 강약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가장 핵심이다. 불의 조절은 제다인의 통찰력과 적절한 순간을 판단할 수 있는 순발력과 결단에 의해 찻잎의 익은 정도의 극점을 간파하는 것이다. 참선 수행에 도움이 되는 차는 수행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수행자는 참선을 통해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므로, 그 간극의 시공간을 장악할 수 있기에 완성도 높은 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의는 어떤 방법으로 차를 만들었을까. 그의 제다법은 〈동다송〉 ‘조다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새로 딴 찻잎에서 묵은 잎을 가려내고 뜨거운 솥에서 덖어낸다. 솥이 뜨거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찻잎을 넣고 급히 덖어내는데 이때에 불을 늦추지 않는다. 알맞게 덖어지면 꺼내서 대자리에 놓고 여러 번 가볍게 둥글리듯이 비비고 털어서, 다시 솥에 넣고 불을 점점 줄이면서 덖는다. 덖고 말리는 것에는 법도가 있다. 차를 만드는 데에는 묘하고도 은미함이 있으니 말로 드러내기 어렵다.(新採 揀去老葉 熱鍋焙之 候鍋極熱 始下茶急炒 火不可緩 待熟方退 徹入中 輕團枷數遍 復下鍋中 漸漸減火 焙乾爲度 中有玄微 難以言顯)
이처럼 초의의 제다 공정은 찻잎 선별하기-첫 덖음(초살청)-비비기(유념)-비빈 찻잎 떨기-다시 말리기(재건)-밀실에서 말림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초의차의 공정 과정은 범해 스님의 ‘초의차’에서도 언급하였다.
맑은 날, 첫 곡우에(穀雨初晴日)
아직 피지 않은 황아 잎을(黃芽葉未開)
깨끗한 솥에 정성을 다해 덖어서(空精炒出)
밀실에서 말리네.(密室好乾來)
측백나무 그릇 둥글고 모나게 묶어서(栢斗方圓印)
대나무 껍질로 잘 포장했네.(竹皮苞裁)
단단히 간수하여 밖의 기운 막으니(嚴藏防外氣)
찻잔에 가득히 향이 뜨는구나.(一椀滿香回)
범해 스님의 다시를 분석해 보면, 첫 번째 구에서 “맑은 날, 첫 곡우에/ 아직 피지 않은 황아 잎”이라 하였다. 이는 채다했던 시점과 찻잎의 상태, 즉 일창일기(一槍一旗)를 말한다. 두 번째 시구는 “깨끗한 솥에 정성을 다해 덖어서/ 밀실에서 말리네”라고 하였다.
이는 제다의 공정 과장으로, 솥에서 차를 덖고, 다시 재건한 후 재차 밀실에서 말린다는 것이다. 밀실은 바로 온돌방을 말한다. 세 번째 구는 차의 포장 방법으로 “측백나무 그릇 둥글고 모나게 묶어서/ 대나무 껍질로 잘 포장했다”라고 하였다. 측백나무 그릇을 차 통이며 죽순 껍질을 이용하여 차를 저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범해 스님이 언급한 초의차는 덖음 잎차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끝〉
출처: 현대불교(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6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