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유나 연구원
- 승인 2025.01.03 13:34
- 호수 1760
1. 올바른 차 도구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
차의 사용에 대한 가장 이른 언급은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하나인 신농(神農)의 전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과 의약의 신인 신농이 수십 가지 독초를 맛보고 차로써 해독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차의 음용이 시작된 정확한 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동진(東晉)대 저술된 『화양국지(華陽國志)』에는 이미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차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랜 시간 소비되어 온 것으로 생각된다. 전 세계인들의 기호품으로 자리 잡아온 만큼 그것을 향유하는 방식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특히 근래 해외의 젊은 젠지(Gen Z)들 사이에서는 말차가 건강과 미용을 위한 음료로 인식되어 이를 소개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셀럽과 인플루언서들의 블로그(Vlog)에는 운동복 차림으로 커피 대신 말차를 휘저어 마시는 모습이 흔히 등장하는데, 심지어 플라스틱 다선(茶筅)을 사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차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활용 그리고 차도구의 다채로운 변주는 무척 흥미롭지만, 차에게 기대하는 효과를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예로부터 ‘영초(靈草)’라고 불렸을 만큼 오묘하고 예민한 차의 기본적인 성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육우(陸羽, 733~804)는 『다경(茶經)』에서, ‘차의 성미(性味)는 차가운데, 청정하고 행실이 (바르며) 검소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알맞다. 열이 오르고 갈증이 나거나 응체되어 답답하고 두통이 있거나 눈이 뻑뻑하고, 사지가 피로하며 온몸의 마디가 뻣뻣할 때에 마시면 효과가 좋다’고 하였다. 다만 ‘채다(採茶)나 제다(製茶)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차를 마시면 병이 날 수 있다’고 부연하였다. 『다술(茶述)』을 저술한 배문(裴汶) 역시 ‘차의 성질은 청정하고 맛이 깨끗하여 번뇌를 씻어주니, 조화를 이룸에 그 공이 있으며, 사악한 기운을 제거하고 (몸과 정신을) 바르게 하는데 도움을 주어 쌓인 병을 쫓아낸다. 그러나 어떤 이는 차를 많이 마시면 몸을 허하게 하고 풍병(風病)이 든다고도 한다’라고 서술하였다.
다른 사료들에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데 이를 종합하면 ‘차는 청정하고 차가운 성질을 지녀 몸과 정신을 맑게 하고 정화해 주지만, 차를 바르게 다루지 못하여 오용하거나 남용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차는 졸음을 물러가게 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혜능(慧能, 638~713)과 같이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 승려들은 이러한 차의 효능과 청아하고도 중용(中庸)의 덕을 요하는 성질을 빌어 수행을 위한 음료로 이용하였다.
이처럼 차가 지니는 효능과 본성을 효과적으로 발현시키기 위하여 그에 맞는 제다와 탕법(湯法)이 개발되고 점차 그에 적합한 기능을 하는 다구들이 고안되었다. 가장 처음으로 이런 관점에서의 정돈된 기준을 마련한 것이 바로 당대 육우였다. 하지만 차에 대한 애호가 확대되고 융성함에 따라 송대에는 차의 심미적인 측면에 치중하여 다사(茶事)의 모든 과정을 예술의 경지로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반면, 지나친 고급화에 따른 사치가 폐단을 낳기도 하였다. 또한 명·청대의 다법(茶法)과 다구는 고절한 문인 취향, 대중적인 편의 등에 의해 다양하게 특화되거나 간소화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 날에도 차는 꾸준히 애호되며 다각화, 저변화를 이루고 있기에 오용의 폐단을 줄이려면 더더욱 차와 다구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다사에 활용되는 차도구는 시대별로 쓰임과 목적에 맞게 다양한 재질과 형태,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공예적 측면에서 차도구는 도자공예, 금속공예, 목공예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과거의 공예는 최초 재료 생산에서부터 최종 마감에 이르기까지 각 공정은 숙련된 장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전수공(全手工)의 과정이었다. 긴 시간의 기술 연마와 수련이 필요한 만큼 불교에서는 공예를 정신적인 수행 과정과 동일시하였고, 때문에 불화를 비롯하여 불상이나 그 외의 다양한 불교 공예품을 제작하는 행위가 불사(佛事)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지금의 기술과 자본 수준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발전했지만 그러한 발전이 제공해준 편의와 간소화된 공정은 ‘온전한’ 공예의 범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금이 가고 불균형한 형태의 다완이라 할지라도 옛 사람들이 빚어낸 작은 기물에는 티 없이 정제되고 정확하게 재단된 공산품에서 느낄 수 없는 힘과 기품이 있다. 이러한 옛것의 독보적인 아우라를 ‘미완(未完)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재질과 색, 크기, 형태가 사용 목적과 여건에 맞게 충분히 고려되고 적절한 조화를 이룬 ‘온전한 본연의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질박한 자연스러움이든 극도의 기교가 주는 화려함이든, 그것을 제작한 의도와 생산 과정에서 반영된 ‘본연성’이 공예품의 가치를 빛나게 한다. 오늘날의 일부 공예는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면이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예란 미적 요소뿐 아니라 ‘기능성’을 바탕으로 명확한 용도와 그에 대한 ‘편의’가 고려된 형태가 필히 전제되어 있었다. 또한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그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유와 담론이 미(美)의식으로 기물 안에 투영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심미성과 기능성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한다.
우리가 차를 즐김에 있어 사용하는 다구도 이와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고 제작 및 선별되어야 한다. 특히 다구의 존재의 목적은 ‘차를 다루고 담아내는 것’이므로 차 도구에 대한 담론을 위해서는 차의 기본적인 성질과 효용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재를 통하여 수많은 차 애호가들과 생산자,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올리고, 이어오고, 정리한 소중한 기록과 정신을 함께 공부하며 옛 사람들의 차 생활과 문화, 그에 대응하는 차 도구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것이 어떠한 배경과 이유에서 그러한 형태와 구성을 이루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반드시 옛것을 답습하거나 그대로 빌려오지 않더라도 지금에 가장 적합하고 올바른 차 도구를 만들고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송유나 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synsynsyn@naver.com
출처: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6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