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유나 연구원
- 승인 2025.02.07 10:07
- 호수 1764
위의 그림은 남송대 화가 유송년의 <연다도(攆茶圖)>이다. 그림은 왼쪽의 차를 준비하는 두 사람과 오른쪽의 책상에 둘러앉은 세 사람으로 크게 양분된다. 그림의 우측, 책상에 앉아서 이제 막 글을 쓰려하는 승려는 당나라 때 초서(草書)체의 대가로 이름난 회소(懷素)이다. 그 곁에 앉은 두 사람은 당대 시인이었던 학사 전기(錢起)와 유명 관리이자 문학인이었던 대숙륜(戴叔倫)이다. 비록 당대 인물을 그리고 있지만 그림 좌측의 두 사람은 남송대의 다법과 다구들로 차를 준비하고 있다.
당대 육우가 『다경』을 저술하여 중구난방이던 차의 제다와 다법, 차도구 등을 정리한 공을 바탕으로 송대에는 차가 더욱 융성하고 발전하게 된다. 제다는 훨씬 정세해져서 ‘연(硏)’과 ‘고(膏)’의 과정을 추가한 단차(團茶)가 개발되었다. 차의 쓴 맛을 제거한 단차는 부드럽고 여린 맛을 지니고 있었고, 서로 더 훌륭한 차를 만들어 겨루는 투다(鬪茶)문화가 성행하였다. 투다는 대략 당 말기에 시작되었는데, 송대에는 황실과 문인, 승려들의 차 애호와 맞물려 하나의 유희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런 관심과 자극들로 인해 더 좋은 차를 내기 위한 다법과 차도구들이 다양하게 개발되었고, 이를 소개하고 기록한 다서들도 많이 저술되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송대 황실 명차의 전형인 소용봉단(小龍鳳團)을 개발한 채양(蔡襄)의 『다록(茶錄)』, 문화와 예술, 차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북송 황제 휘종(徽宗)의 『대관다론(大觀茶論)』, 남송대 다구를 정리한 심안노인(審安老人)의 『다구도찬(茶具圖贊)』 등이 있다. 이 다서들의 내용을 종합하여 당시 유행한 다법인 점다법(點茶法)과 그에 소용된 다구들에 대해 <연다도>를 보며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원통형의 맷돌을 돌리고 있는 사람을 보자. 이것은 다마(茶磨)라고 하는 차를 가루 내는 도구이다. 다마 아래쪽 받침부로 고운 찻가루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차를 가루 내는 도구는 연(碾)과 마(磨)가 있는데, 연은 병차(餠茶)를 음용한 당대부터 단차가 유행한 송대 이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단차는 무척 단단하기 때문에 연에 갈기 전에 금이나 철을 구부려 만든 집게(다검, 茶鈐)로 집어 불에 구워준다. 구워서 포슬해진 단차를 침추(砧椎)로 부순다. 채양 『다록』에 의하면 침추는 나무로 된 받침에 차를 올린 후 쇠나 금으로 된 망치로 차를 내리치는 도구이다. 심안노인의 『다구도찬』에도 목대제(木待制)라는 별명의 비슷한 도구가 등장한다. 이것은 나무절구의 작은 원통형 구멍에 차를 넣고 나무공이를 꽂은 후 망치로 공이를 내려쳐 안에 있는 단차를 부수어 준다.
대개 연은 침추와 짝을 이루며 병차, 단차와 같은 덩이차를 가루 낼 때에 쓰이고, 다마는 산차(散茶)를 가루 내는 데에 쓰이는 것으로 본다. 송대에는 단차와 같은 덩이차 뿐 아니라 잎차 개념의 산차도 생산되었는데 이 당시에는 산차 또한 가루를 내어 음용하였다. 이렇게 연이나 다마에 가루 낸 차를 고운 비단을 씌운 체(다라, 茶羅)에 쳐서 더욱 미세한 분말을 취한다.
그림 속 다마의 앞쪽에는 가루낸 찻가루를 모으는 차빗자루가 있다. 대개 종려나무 껍질의 고운 섬유로 만들고 『다구도찬』에는 종종사(宗從事)라는 별명으로 소개되어 있다. 차빗자루와 함께 고리 달린 수저가 놓여있는데, 이는 모은 찻가루를 뜨는 수저인 칙(則)으로 생각된다.
송대의 점다법에서 물을 끓이거나 끓인 물을 담는 도구를 대개 탕병(湯甁)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탕병은 끓인 물을 완에 부을 때 찻물의 양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목과 몸체가 길쭉하며 주둥이가 얇고 미려한 곡선을 띈다. 『다록』과 『대관다론』에 의하면 재질은 금이나 은이 좋고, 철이나 돌, 자기로도 만든다고 하였다. 화로 옆에 서있는 사람이 한쪽 손에 들고 있는 주자가 송대의 전형적인 탕병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반대 손에 찻가루가 담긴 다완을 쥐고 이제 막 끓인 물을 부으려 하고 있다.
다완에 찻가루를 넣고 끓인 물을 부으면 곧이어 물과 찻가루를 빠르게 휘저어 거품을 내는 격불(擊拂)을 한다. 격불을 위해 처음에는 차숟가락인 다시(茶匙)를 사용했으나 휘종대에 이르러 보다 섬세하고 풍성한 거품을 만들기에 용이한 구조의 다선(茶筅)이 개발되었다. 다선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만든 솔이다. 그림 속 차를 준비하는 사람이 손에 쥔 다완 아래로 다선이 놓여있다. 이렇게 끓인 물을 붓고 격불하는 과정을 ‘점다’라고 하는데, 대체로 우윳빛의 차 거품이 풍성하고 밀도 있게 피어나 잔면에 오래 붙어있어야 점다가 잘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점다가 이루어지는 다완 또한 중요한 기물이었는데, 송대에는 흑색 바탕에 가느다란 토끼털 무늬가 있는 건요(建窯)의 흑유잔을 제일로 삼았다. 고를 짜내어 엽록소를 제거한 단차는 가루 내어 격불하면 새하얀 차 거품이 올라오기 때문에 흑색의 잔에서 대비감이 돋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기벽이 두터워 손에 잡기에 뜨겁지 않으면서도 내부의 온기는 오래 지속될 수 있어 기능적으로도 뛰어났고, 구연 아래에 속구(束口)라고 하는 홈을 둘러 격불 시에 찻물이 쉽게 흘러넘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흑유잔은 건안 지방의 고급 단차를 마실 때나 투다하는 사람들 사이에 애용되었다.
물론 청자, 백자, 청백자, 백유자 등도 다완으로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고급 단차가 아니거나 산차를 가루 내어 마실 때에 일반적으로 선택된 찻그릇이었다. 특히 산차는 제다 시에 단차처럼 고를 짜내는 공정이 없기 때문에 차색이 하얗지 않아 검은색의 잔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 속 인물도 백색의 다완을 들고 있는데, 다마에 갈고 있는 차가 산차로 추정되는 만큼 백색의 다완과 짝을 이룸이 자연스럽다. 차를 준비하는 상의 뒤쪽으로는 다완을 받쳐줄 붉은 주칠의 잔 받침이 쌓여있다.
정밀하도고 다양해진 제다 기술을 바탕으로 다법과 차도구에 있어서도 차의 정세하고 여린 맛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차의 특성과 종류에 맞추어 연과 다마의 사용을 달리하고, 격불을 위해 다선을 새로 개발하였으며, 다완 재질에 차이를 두거나 흑유잔 같은 새로운 형태의 다완을 고안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송대의 차문화는 풍성해질 수 있었지만 지나치게 복잡하고 사치스럽다는 폐단도 존재하였다. 이에 점다법은 조금씩 쇠퇴를 거듭하다 명청대에 이르면 전대에 비해 간소해진 포다법(泡茶法)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송유나 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synsynsyn@naver.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