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맛은 화로의 불 조절이 빚어내는 결과물
육우, ‘사지기’ 조서 찻물 끓이는 화로의 중요성 강조해
대나무 화로도 존재…명·청대에 애용됐을 것으로 추정


지난 연재까지는 시대별 탕법(湯法)에 따른 차 도구의 구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차를 끓일 때 쓰인 차 도구의 특징과 쓰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편에서 먼저 설명할 주제는 차를 다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불, 그 불을 담아내는 화로(火爐)다. 육우가 ‘다경(茶經)’에서 차를 끓이는 데 쓰이는 도구를 소개한 ‘사지기(四之器)’ 조(條)를 통해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화로였다. 차를 마시기 위해 가장 선행하여야 하는 과정은 찻물을 끓일 불을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명대 전예형(田藝蘅, 1524~1591)은 ‘자천소품(煮泉小品)’에서 “물이 있고 차가 있음에 불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불이 없다는 것은 (불의) 알맞은 바를 잃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람은 탕후(湯候, 끓는 물을 살피는 것)만을 알고 화후(火候, 불을 살피는 것)를 알지 못한다. 불이 타면 물이 마르니, 마땅히 불을 먼저 살피고 물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찻물을 제대로 끓이기 위해서는 불을 먼저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불을 제대로 살피고 다룬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허차서(許次紓, 1549~1604)가 쓴 ‘다소(茶疏)’에 그 내용이 잘 담겨 있는데, 그 요지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불을 땔 때는 단단한 나무로 만든 숯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숯불을 제대로 피워내지 못하면 연기만 많이 나게 되니 연기의 탄내가 끓인 물에 배면 그 물을 쓸 수 없다. 따라서 숯을 태울 때는 온전히 붉게 달아오르도록 하여 연기 섞인 불길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숯불의 본력을 잘 살리면 (연기가 사라지고) 맹렬한 불꽃을 이루어 물이 쉽게 끓는다고 한다. 이것은 불을 활화(活火)로 만드는 것인데, 차를 즐겼던 문인들의 다시(茶詩)를 보면 활화에 찻물을 끓인다는 표현이 왕왕 등장한다.
이렇게 제대로 붉어진 숯이 마련되면 비로소 물그릇(탕관, 湯罐)을 화로에 올리고 곧바로 부채질한다. 부채질은 더욱 빠르고 오묘하게 해야 하며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되는데, 허차서는 부채질을 멈추어서 지나치게 끓은 탕은 버릴지언정 다시 끓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불에 따른 물의 변화를 예민하게 생각한 것이다.
위의 두 그림은 명대 당인(唐寅, 1470~1524)의 ‘전다도(煎茶圖)’(위)와 왕문(王問, 1497~1576)의 ‘자다도(煮茶圖)’(아래)이다.
두 그림의 분위기는 제법 비슷한데, 이는 골동을 완상(玩賞)하면서 시서화를 즐기며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던, 명대 문인들의 아취 있는 취미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두 그림 속 인물들은 각자 화로 앞에 앉아 진지한 모습으로 찻물을 끓이고 있는데, 아래 그림 속 인물도 부채질하며 신중하게 숯불을 살피고 있다.
그런데 두 그림 속 화로의 형태가 서로 다르다. 아래의 화로는 세 개의 발을 지니고 있으며 괴수 얼굴의 손잡이가 달린 고동기의 형태이고, 위의 화로는 대나무를 짜서 만든 사각의 상자 모양이다.
명 태조의 아들 주권(朱權, 1378~1448)은 ‘다보(茶譜)’에서 화로에 대해 단약(丹藥)을 만드는 신정(神鼎)과 같은 형태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이미 육우 시기부터 애용되어 온 화로의 형태로, ‘다경’ 속 육우의 기록에 따르면 “동이나 철로 만드는데 옛 정(鼎)과 같은 모양”이라고 하였다. 정은 고대 상(商)나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예기(禮器) 중 하나로 음식을 데우는 데 사용한 기물이다. 정은 세 개의 발이 달려있고 표면은 기하학적 문양이나 화로의 작용과 관련된 바람, 불, 물을 상징하는 주역의 괘 등으로 장식되었다. 이 형태는 역대 왕조의 방고(倣古) 취향에 따라 골동 화로의 원형을 유지하며 꾸준히 제작되었다.
위 그림 속 사각의 죽제 화로는 문인들의 고절한 취향과 맞물려 명·청대에 주로 애호된 것으로 보인다. 명대 도륭(屠隆, 1543~1605)의 ‘다설(茶說)’을 보면 차에 가장 잘 어울리고 진귀한 차 도구로 ‘대나무 화로’를 예찬하였고, 청의 건륭제(乾隆帝) 역시 대나무 화로에 차를 끓인다는 내용의 시를 짓기도 하였다. 불을 피우는 화로를 나무로 제작해도 괜찮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틀을 금속으로 만들고 흙으로 내벽을 만들기 때문에 대나무를 씌운 겉면을 제외하면 일반 화로와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화로 내부에 흙으로 내벽을 삼는 것은 내열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대나무 화로와 같은 사각 형태는 부뚜막과 비슷하여 다조(茶竈)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청대 장대복(張大復, 1554~1630)은 ‘문안재필담(聞雁齋筆談)’에서 차는 물에서 지기(知己: 나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참된 벗)를 만나야 하지만, 다조와 다로에서 끓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화로는 이토록 중요한 불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도구로서 재질과 구조, 외적인 장식에 담긴 의미에 이르기까지 본질적인 쓰임에 충실하도록 제작되었다. 불과 화로에 대해 살펴본 데에 이어 다음 시간에는 찻물을 끓이는 탕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 법보신문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