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유나
- 승인 2025.03.21 13:07
- 호수 1770
지난 글에서는 찻물을 끓이기 위해 불을 품는 화로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화로 위에 올려 물을 끓이는 탕관을 설명하기에 앞서, ‘찻물로 쓰이는 물 자체의 중요성’과 옛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저장하였는지, 그리고 이에 소용된 기물은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명대의 장원(張源)은 ‘다록(茶錄)’에서 찻물로 사용하기 좋은 물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산 정상에서 솟는 샘물은 맑고 가볍고, 산 아래 샘물은 맑되 무겁다. 돌 사이의 샘물은 맑고 달고, 모래 사이 샘물은 맑고 시원하다. 흙에서 나는 샘물은 맑지만 무겁다. 흐르는 물은 가만히 (고여) 있는 것보다 좋고, 그늘진 곳의 물이 해를 받는 쪽의 물보다 좋다 … 빼어난 산에서 나는 물에는 신묘함이 있다. 참된 샘물은 (잡내 없이) 무미(無味)하고, 무향(無香)이다.”
이는 물이 나오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그 성질과 맛이 다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당대의 육우(陸羽)와 장우신(張又新)은 무석(無錫) 혜산사(惠山寺)의 석천수(또는 석천)를 천하에서 두 번째로 좋은 물이라 평가했는데, 장원의 언급대로 빼어난 산 위의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니 찻물로서는 상등품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천하 제1의 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지만, 무석 혜산사의 석천수가 천하 버금인 데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바였기에 오히려 좋은 물의 대명사로 널리 일컬어지며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후대로 갈수록 ‘석천수’라는 이름보다 혜산사의 이름을 따 ‘혜산천(惠山泉)’, ‘혜수(惠水)’라고 불리며 차에 관한 기록에서 ‘좋은 물’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주 언급되었다.
그림은 명대 문인화가 문징명(文徵明)의 ‘혜산다회도(惠山茶會圖)’ 중 일부다. 문징명은 1518년에 혜산의 샘물이 솟는 정자각에서 다회를 열고 그 장면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문징명을 비롯한 여러 화가가 혜산의 물을 앞에 두고 차를 끓이는 모습을 작품으로 남겼는데, 이를 통해 진귀한 찻물로서의 혜산천이 지니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혜산의 물처럼 귀한 것은 그 근방에 거주하지 않으면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차를 끓이려면 근거리의 신선한 샘물을 길어 바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지리적 환경에 따라 산에서 솟는 맑은 샘이 없는 지역에서는 인근의 강물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과 눈을 저장해 두고 사용해야 했다. 설령 비용과 공을 들여 먼 곳에서 좋은 물을 공수해 오더라도 그것을 아무렇게나 보관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물을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하였다.
명대 허차서(許次紓)의 ‘다소(茶疏)’, 주국정(朱國禎)의 ‘용당소품(湧幢小品)’ 등은 그 방법을 잘 설명하였다. 그 내용을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다.
물은 대옹(大甕)과 같은 커다란 항아리에 저장하는 것이 좋지만, 갓 만든 새것은 쓰지 않는다.
새것은 항아리를 구워낸 불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인데, 항아리에 밴 불기운이 물을 상하게 한다. 물이 상하면 벌레가 생기기 쉬우니, 오래된 항아리를 쓰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다른 용도로 쓰던 항아리는 가장 나쁘다. 담았던 것의 잡내가 그대로 스며 있기 때문이다.
물을 담은 항아리는 그늘진 뜰에 두는데, 혹은 비단으로 덮어 기운은 통하되 햇볕을 바로 쐬지 않도록 한다. 밤에는 항아리를 열어 별과 밤이슬의 맑고 고결한 기운을 직접 받게 하면 물의 영화로운 진기가 흩어지지 않고 영험한 기운이 상존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항아리의 입구를 나무나 돌로 눌러두고, 종이나 대껍질로 봉하고, 낮의 뜨거운 햇볕을 받게 한다면 물의 정기가 닫히고 소멸되어 상하고 맛이 어긋난다. 처음 며칠 동안 물이 안정되기를 기다려 항아리 바닥에 불순물이 쌓이면 위의 깨끗한 물만 떠내 단지에 담아 차를 달인다.
이 방법들을 따라 물을 잘 관리하면 차를 끓임에 있어 혜산의 물과 차이가 없을 것이라 하였는데, 이런 방식은 앞서 언급한 장원 ‘다록’의 좋은 샘물이 나오는 조건과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혜산의 물을 직접 길어오지 못하더라도, 물을 담아 저장하는 과정에서 혜산과 같은 좋은 물이 생겨나는 바와 유사한 조건을 만듦으로써 좋은 물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을 저장하는 항아리의 모습은 앞선 연재에서 소개한 남송대 유송년(劉松年)의 ‘연다도(攆茶圖)’, 명대 당인(唐寅)의 ‘금사도(琴士圖)’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유송년의 ‘연다도’를 보면 다완을 손에 들고 점다를 준비하는 사람의 뒤쪽에, 연잎 모양의 뚜껑을 지닌 큰 항아리가 높은 받침에 안치되어 있다. 당인의 ‘금사도’에도 찻물을 끓이는 화롯가 곁으로 커다란 항아리가 있는데, 물을 쉽게 떠내도록 국자가 함께 걸쳐져 있다.
전예형(田藝蘅)은 “(좋은) 물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을 끓임에 마땅함을 얻을 수 없으니, 좋은 차를 얻더라도 좋을 수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제대로 된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좋은 차와 불, 절묘한 온도가 필요하지만, 이 또한 좋은 물을 얻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