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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송유나의 역사 속 차 문화와 차 도구 이야기] 7. 물을 생(生)하는 탕관(湯罐)에 대하여 - 탕관 제1편

  • 관리자
  • 2025-04-11   조회수 : 24

7. 물을 생(生)하는 탕관(湯罐)에 대하여 - 탕관 제1편

  •  송유나
  •  
  •  승인 2025.04.04 15:38
  •  
  •  호수 1772
 

각 시대 탕법·편의에 맞춰 여러 형태·제질로 제작

육우, 사치스런 은보다 튼튼하고 차맛 내기 좋은 생철 복 추천
송대, 황실 고급 차문화 영향으로 금은 재질 탕병 최고로 여겨
명대, 포다법 유행…끓인 물 바로 다관에 옮겨 붓는 탕관 애용

송 휘종(徽宗) ‘십팔학사도(十八學士圖)’, 권(卷),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송 휘종(徽宗) ‘십팔학사도(十八學士圖)’, 권(卷),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차를 마시기 위해 숯의 본력을 살린 절묘한 온도의 불[活火]과 좋은 물[甘泉]을 얻었다면 이들의 조화로 물을 끓여서 적절한 온도의 탕수(湯水, 끓은 물)를 얻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하다. 좋은 탕수란 차의 진수를 온전하게 드러낼 바탕이 되는 것이니, 물을 끓여내는 탕관의 존재는 다사(茶事)의 과정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물을 담아 화로에 올려 물을 끓이는 도구는 그 시대에 유행한 탕법(湯法)과 세세한 편의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와 재질로 제작되었으며 당(鐺), 요(銚), 복(鍑), 병(甁), 관(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에서 처음으로 찻물을 끓이는 도구에 대해 논하였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복은 생철로 만드는데, 안쪽은 매끈하게 만들어 씻어내기 좋게 하고, 바깥쪽은 꺼끌꺼끌하게 만들어 화염이 잘 모이도록 한다. 구연이 넓은 것은 불길이 널리 미치고, 복부가 깊은 것은 솥 안 온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복부가 깊으면 물이 안에서 끓고, 물이 안에서 끓으면 차 가루가 잘 떠서 맛이 깨끗하다. 홍주(洪州)에서는 자기(瓷器)로 만들고 내주(萊州)에서는 돌로 만든다. 자기나 돌은 모두 아취가 있지만 견실하지 못하여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은을 쓰면 지극히 깨끗하나 사치하고 화려한 것이 거슬린다. 오래도록 쓰려면 철이 가장 좋다.”

육우의 시대에도 이미 철, 은, 도자기, 돌 등 다양한 소재로 찻물을 끓이는 도구를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도자기나 돌은 열이나 외부 충격에 의한 내구성이 약한 단점이 있으며, 은은 좋지만 고급의 소재인 만큼 사치품에 가까워 편히 쓰기에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기에 철이 가장 튼튼하면서도 차 맛을 내기에 좋다고 평하였다. 육우가 언급한 복의 구조는 열이 흩어지지 않도록 모아주면서도 고르게 퍼져나갈 수 있게 하여 물이 그릇 내부의 중심에서 제대로 끓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또한 물이 끓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에 좋고, 물이 적정 온도로 끓었을 때 차 가루를 넣어 젓가락[죽협, 竹筴]으로 휘젓기 좋았기 때문에 육우가 제창한 자다법(煮茶法)에 어울리는 형태였다. 그것은 손잡이의 형태나 위치, 물을 따라내는 주구의 유무에 따라서 ‘당’이나 ‘요’, ‘복’ 등으로 종류가 세분되었는데, 대략의 형태는 2화에서 소개한 ‘소익잠난정도(蕭翼賺蘭亭圖)’의 장면을 참고할 수 있다.

송대로 접어들면 찻물을 끓이는 도구로 ‘탕병(湯甁)’을 주로 사용하게 된다. 채양(蔡襄)의 ‘다록(茶錄)’과 휘종(徽宗)의 ‘대관다론(大觀茶論)’을 통해 탕병에 대한 묘사를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병은 마땅히 금·은으로 만들고, 크기는 사용할 찻물의 양에 맞추어야 하지만, 작아야 물이 끓는 상태를 살피기에 쉽고, 끓인 물을 다완에 부을 때 기준 삼기에 좋다. 탕을 부을 때 좋고 나쁨은 병의 주둥이[注口]에 달려있다. 주둥이는 조금은 커야 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띄듯 하면서도 곧아야 탕을 부을 때 물줄기가 힘이 있어서 흩어지지 않는다. 주둥이의 끝은 둥글고 작고 높게 깎여진 듯해야 탕을 부을 때 세기와 양을 조절할 수 있어서 물방울을 흘리지 않는다. 대개 물줄기의 힘이 좋으면 빠르게 부어도 조절할 수 있고, 물방울을 흘리지 않아야 차의 거품이 깨지지 않는다.”

황실의 주도로 차문화가 고급화되고 사치해지는 송대에 이르면 다른 소재에 비해 금과 은을 최고로써 손꼽는 기록이 많아진다. 송대 사용된 탕병의 형태는 위의 ‘십팔학사도(十八學士圖)’(일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차를 애호하고 문예에 뛰어났던 북송의 황제 휘종의 작품이라고 전한다. 그림의 주제는 당나라 십팔학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그들이 마실 차를 준비하는 장면은 송대의 탕법과 다구 구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그림 가운데 다완을 들고 있는 사람의 왼편에는 숯이 가득 담긴 대형의 검은 사각 화로 안에 두 개의 탕병이 끓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송대의 탕병은 당대나 명·청대에 비하여 몸과 몸체가 길쭉하고, 크고 늘씬한 주둥이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다완에 끓인 물을 정교하게 부어서 풍성하고도 밀도 있는 거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점다법(點茶法)의 특성에서 비롯된 기형이다.

명·청대에는 끓인 물을 다관(茶罐)이나 개완(蓋碗)에 찻잎과 함께 넣고 우리는 포다법(泡茶法)이 유행하였다. 고절한 문인 취향으로 넘어온 명대에는 오행(五行)원리의 금생수(金生水) 개념을 취하여 최적의 찻물을 끓여내는 금·은의 기능적 장점을 분명히 하되, 철이나 주석의 실용성과 고상한 아취를 찬미하는 기록들이 많이 나타난다. 이때에는 송대의 탕병보다 키가 작고 목이 없거나 짧은 통통한 몸체에 작은 주둥이가 달린 ‘탕관(湯罐)’을 사용하게 된다. 최적의 온도로 끓인 물을 다관에 곧바로 옮겨 부어주는 것이 탕관의 목적이기 때문에 굳이 긴 몸체와 큰 주둥이를 경유하며 찻물을 식게 할 필요가 없었다. 물이 끓는 모습이 잘 보이는 당, 요, 복 또한 물을 끓여서 다관에 붓기 용이한 단순한 형태였으므로 당대에 이어서 꾸준히 애용되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시대별 필요에 따라 최적의 찻물을 끓여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구의 소재와 형태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이렇게 고안된 다구들을 가지고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좋은 찻물을 끓였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