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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송유나의 역사 속 차 문화와 차 도구 이야기] 9. 차(茶)를 저장하는 다구에 대하여

  • 관리자
  • 2025-05-23   조회수 : 32

9. 차(茶)를 저장하는 다구에 대하여

  •  송유나
  •  
  •  승인 2025.05.16 14:16
  •  
  •  호수 1777
 

차의 색‧향‧미를 수호한 산죽‧다롱

산죽으로 차의 향과 성질을 온전히 유지…차 포장에 즐겨 사용
차를 불에 말리고 건조하는 데 쓴 다롱, 금·은으로 제작하기도
격식 갖춰 차 부치는 도구로 활용…보관만큼 유통 과정도 중요

산서성(山西省) 대동시(大同市)에 위치한 풍도진(冯道真, 1189~1265)이라는 전진교(금나라때 유행한 도교 교파의 일종) 관리 묘 벽에 그려진 벽화 ‘동자시다도(童子侍茶图)’. [필자 제공] 
산서성(山西省) 대동시(大同市)에 위치한 풍도진(冯道真, 1189~1265)이라는 전진교(금나라때 유행한 도교 교파의 일종) 관리 묘 벽에 그려진 벽화 ‘동자시다도(童子侍茶图)’. [필자 제공] 

위 그림은 금~원대에 걸쳐 살았던 풍도진(冯道真, 1189~1265년)이라는 도교(道敎) 관원의 묘 벽에 그려진 벽화 ‘동자시다도(童子侍茶图)’이다. 대나무와 괴석, 모란이 어우러진 야외의 사각 탁자에 다완과 잔탁을 비롯한 여러 다구가 놓여 있고 한 동자가 차를 준비하여 가는 모습이 담겼다. 이 그림에서 재미있는 점은 탁자의 가장 앞 열 오른쪽 뚜껑 달린 작은 항아리에 쓰인 글자에 있다. 항아리에는 글자가 쓰인 표찰이 붙어있는데, 그 글자를 자세히 보면 ‘다말(茶末, 찻가루)’이라고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송대에 비해 원대의 점다(點茶) 문화가 많이 퇴색된 감이 있지만, 야외의 찻자리에서는 여전히 차를 빻아 위와 같은 항아리에 휴대하기도 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려면 그림처럼 야외 찻자리나 여행 등의 이동 시에 필요한 만큼의 차를 소분하여 휴대했을 것이다. 또 집에는 새로 만든 햇차나 묵은 차를 다량으로 보관해 두어야 했으며, 공납이나 선물, 요청에 의한 배송을 위해서도 그에 맞는 포장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그에 맞게 소용된 기물과 적절한 관리 방식이 존재하였을 텐데, 이번 편에서는 이렇게 차를 보관하는 다구에 대해 살펴보겠다.

명대에 편찬된 ‘농정전서(農政全書)’를 비롯한 여러 문헌 기록에는 차를 보관하는 방법들이 기록돼 있다. 그 내용을 종합하면, 차는 반드시 깨끗한 곳에 두어야 하고 습기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보통 앵(罌 또는 甖)이나 옹(甕), 담(罈)이라고 하는 단지나 항아리에 차를 담는데, 우선 잡내가 배지 않도록 잘 씻고 건조해야 한다. 건조 과정에서는 항아리 안에 연기 없이 새빨갛게 달궈진 숯을 넣고 햇빛을 쐬어 말린다. 그렇게 잘 말린 항아리를 찻잎만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항아리의 바닥에 찻잎을 넣고 남은 공간에 숯이나 산죽, 볏짚, 모래 등을 넣어 습기와 잡내를 없앴다. 
 

오른쪽은 산죽(조릿대). [국립수목원]
오른쪽은 산죽(조릿대). [국립수목원]

차를 보관하거나 포장하는 데에는 산죽이 가장 많이 쓰였다. 산죽[篛 또는 箬]은 조릿대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작은 대나무의 한 종류다. 차는 다른 향이 배는 것을 피해야 하는데, 산죽은 차의 향을 해지치 않고 차의 성질을 온전히 보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재료다.

이러한 산죽잎을 잘 말려서 항아리의 바닥에 깔고, 차를 넣은 후 그 위에 남은 자리를 다시 산죽잎으로 채운다. 차를 꺼내 쓸 때마다 그 빈 공간을 산죽잎으로 다시 채워준다. 이렇게 산죽잎으로 항아리의 빈 공간이 없도록 채운 다음, 두꺼운 종이로 입구를 감싸고 불에 구워 은근한 열기를 띠는 전돌로 눌러 두거나, 입구를 봉하여 거꾸로 두어 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게 봉한 항아리는 높고 바람이 잘 통하면서 습하지 않은 곳에 두어야 한다. 너무 열기가 있거나 습하고 냉기가 도는 곳은 좋지 않다.

차를 휴대하거나 포장하여 부칠 때는 종이로 첩을 만들거나, 습기 또는 오염으로부터 안전하도록 밀랍을 입힌 종이[蠟紙]로 봉하였고, 나무로 만든 작은 합에 넣기도 하였다. 특히 황실에 진공하는 고급 차에는 산죽잎과 황금색 비단, 붉은 칠을 한 나무 합에 도금한 자물쇠까지 수 겹, 또는 수차례 실용적이고도 장식적인 포장을 더하였다.

그 외에도 차를 보관하거나 부치는 용도로 사용된 기물 중에 다롱(茶籠)이 있다.

다롱은 ‘차를 담는 바구니’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보통 차를 불에 말리고 건조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송대 소식(蘇軾, 1037~1101년)의 시에서 또 다른 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소식의 ‘초천지에게 혜산천의 물을 구해주기를 청하는 시[焦千之求惠山泉詩]’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故人憐我病 친구가 나의 병을 가엾게 여겨서
蒻籠奇新馥 부들로 만든 다롱(蒻籠)에 향긋한 햇차를 보내왔다네.
欠伸北窗下 북쪽 창가에서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晝睡美方熟 낮잠이 달콤히 무르익었는데
精品厭凡泉 좋은 차는 평범한 샘물을 싫어하니
願子致一斛 그대여 부디 (혜산천) 한 말만 보내주시게나.

이 시를 보면 소식의 지인이 향긋한 햇차를 다롱에 넣어 보내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다롱은 금이나 은, 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기도 하였는데, 당 황실에서 공양한 법문사(法門寺)의 지하궁에서 출토된 금제 다롱이 그 예이다. 소식을 비롯한 송대의 여러 다시에서는 이러한 다롱에 차를 담아 보내온 내용이 제법 등장하는데, 조금은 격식을 갖추어 보내는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편에서는 차를 보관하고 포장하는 방법과 그에 사용된 기물의 종류, 용도에 대해 알아보았다. 차의 색(色)·향(香)·미(味)를 해치지 않고 최적의 상태로 보존할 수 있는 소재와 그것을 주고받을 때 어울리는 적절한 기물 선택 등 좋은 차를 제다(製茶)하여 마시는 과정 사이에 그 차를 보관하고 유통하는 과정도 중요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