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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보신문] [송유나의 역사 속 차 문화와 차 도구 이야기] 10. 차(茶) 덩이 쪼개는 ‘침추(砧椎)’

  • 관리자
  • 2025-05-31   조회수 : 33

10. 차(茶) 덩이 쪼개는 ‘침추(砧椎)’

  •  송유나
  •  
  •  승인 2025.05.30 12:59
  •  
  •  호수 1779
 

억센 덩이도 꺾고 쪼개니, 그 ‘강직함’이여

남송대 스님들 차문화 담은 ‘오백나한도’에 ‘침추’도 등장
‘다구도찬’서도 침추 묘사…오백나한도 속 모습과 유사성 보여
차 덩이를 쪼개 가루로 만드는 데 기여…다연‧다라와 한 세트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 중에서 ‘흘차(吃茶)’ 부분. 일본 교토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 중에서 ‘흘차(吃茶)’ 부분. 일본 교토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

오른쪽 그림은 남송대 화가 주계상(周季常)과 임정규(林庭珪)가 그린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일본 교토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의 한 장면이다. 명주(明州) 혜안사(慧安寺)의 스님이었던 의소(義紹)의 의뢰로 10여 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제작된 그림으로, 오백나한들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총 100가지 장면으로 담아낸 장대한 작품이다.

나한(羅漢)이란 범어에서 비롯된 아라한(阿羅漢, Arhat)을 줄인 말로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이자 대중을 구제할 임무를 부여받은 자’를 뜻한다. 부처의 열반 후 부처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가섭이 부처의 설법과 교리를 정리하기 위해 불도들을 모았는데, 그때 모인 500명으로부터 오백나한의 개념이 비롯되었다. 이러한 오백나한은 당말부터 송대에 걸쳐 점차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당시의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오백나한을 통해 반영된 그 시대 승려들의 생활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림 속 장면은 오백나한들이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나라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집필하여 차 문화 부흥을 이끌기 전부터 선종(禪宗)의 스님들은 수행할 때 졸음을 쫓고, 정신과 기운을 맑게 다스리기 위하여 차를 마셨다. 이처럼 차를 마시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스님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우리는 이 그림 속 나한들의 모습에서 남송대 찻자리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나한들은 기암괴석 사이에 모여 앉아 차가 준비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림의 상단 왼쪽에는 한 시동이 차 끓일 물을 구하기 위하여 한 손에는 탕병(湯甁)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국자로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받고 있다. 그림의 하단에는 도깨비처럼 생긴 두 명의 역사(力士)가 있다. 이 중 한 명은 화로 앞에서 부채로 불길을 조절하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바닥에 앉은 채 열심히 다연(茶碾)에 차를 갈고 있다.

집중하여 차를 갈고 있는 역사 곁으로 원통형의 몸체에 길쭉한 막대가 박혀 있는 물건이 놓여 있는데, 이것이 오늘의 주제인 ‘침추(砧椎)’다.

송대 유행했던, 단차(團茶) 같은 덩이차는 무척 단단하여 그대로 가루를 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연에 갈기 전에 우선 차 덩이를 불에 구워 포슬하게 부풀어 오르도록 만든 후 침추로 쪼개야 했다.

북송 채양(蔡襄)이 쓴 다서 ‘다록(茶錄)’에는 침추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는데, “나무 받침에 차를 올려놓고 쇠나 금으로 된 망치로 차를 내리치는 도구”라고 정의하였다.

남송대 심안노인(審安老人)이 쓴 ‘다구도찬(茶具圖贊)’(1269년)에서는 침추의 형태를 그림으로 묘사하면서 목대제(木待制)라는 별명으로 침추를 소개하고 있다.

‘다구도찬’에서 그려진 침추를 보면, ‘오백나한도’에서 표현한 침추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 다 남송대 작품으로 이 시기 사용된 침추의 형태를 자세히 보여준다. 두 그림에서 동일하게 묘사된 원통형 나무절구의 중간에는 좁고 깊은 원통형 구멍이 몸통 깊숙이 뚫려있다. 이 구멍 안에 단차를 넣고 나무 공이를 꽂은 뒤, 절구의 몸통 밖으로 튀어나온 공이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면 그 힘이 차 덩이를 여러 조각으로 쪼갠다.

심안노인(審安老人) ‘다구도찬(茶具圖贊)’(1269년) 중에 (木待制)’ 부분.
심안노인(審安老人) ‘다구도찬(茶具圖贊)’(1269년) 중에 (木待制)’ 부분.

 

또한 ‘다구도찬’에서는 남송대 사용된 주요 다구를 사람으로 의인화하여 예찬하는 방식으로 특징을 설명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목대제(木待制)
이름은 이제(利濟)이며, 자는 망기(忘機), 호는 격죽거인(隔竹居人)인데,
하늘의 별들과 통하고, 만민을 구제하며,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다네.
아무리 억센 것도 꺾어 부수니, 네모진 것을 따르고 둥근 것을 쫓는 무리들은 제 몸을 보존할 수 없을지니라.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러나 법조(다연, 茶硏)의 보좌와 추밀(다라, 茶羅)의 도움이 없다면 그 공을 이룰 수 없으리.

‘목대제’의 ‘대제’는 벼슬 이름이다. 나무로 만들어지는 침추의 특징을 따서 목대제라고 불렀다. 그의 성품은 강직하여 아무리 억세고 굳센 자도 꺾어 부술 수 있는데, 이 같은 목대제 앞에서 제 몸을 보존할 수 없는 대상을 단차의 모양에 빗대어 ‘네모진 것을 따르고 둥근 것을 쫓는 무리들’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재미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하고 대단한 목대제(침추)라 할지라도 ‘다연(금법조)의 보좌와 다라(나추밀)의 도움 없이는 그 공을 이룰 수 없다’고 하였다[심안노인의 ‘다구도찬’에는 침추 뿐만 아니라 다연(茶硏)과 다라(茶羅)도 소개하고 있는데, 다연을 금법조(金法曹), 다라를 나추밀(羅樞密)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침추와 다연, 다라’ 세 가지 도구가 짝을 이루어야 제대로 된 찻가루를 준비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