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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송유나의 역사 속 차 문화와 차 도구 이야기] 11. 차(茶)를 곱게 가루 내는 다구들에 대하여

  • 관리자
  • 2025-07-06   조회수 : 17

11. 차(茶)를 곱게 가루 내는 다구들에 대하여

  •  송유나
  •  
  •  승인 2025.06.16 14:21
  •  
  •  호수 1781
 

거친 차를 곱게 길들이는 다마‧다연‧다라 

찻가루를 내는 다마‧다연…찻가루를 재차 거르는 다라
남송대‧고려시대 유행한 점다법서 필수적이었던 도구들
이인로, 시조서 문학적 표현으로 다마 돌리는 모습 묘사

유송년, ‘연다도(攆茶圖)’, 남송, 대만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유송년, ‘연다도(攆茶圖)’, 남송, 대만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지난 편에서는 단단한 덩이차를 가루로 만들기 전, 일차적으로 자잘하게 조각내는 도구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이렇게 조각낸 차를 세밀하고 부드럽게 가루 내는 과정에 쓰이는 여러 다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옆의 그림은 남송대 화가 유송년이 그린 ‘연다도(攆茶圖)’의 한 부분이다. 차를 준비하고 있는 인물은 평상에 걸터앉아 맷돌을 돌리고 있다. 이는 차를 가루 낼 때 사용하는 맷돌 다마(茶磨)이다.

다마와 같은 기능을 지닌 다구로는 다연(茶碾)이 있다. 다연은 약재를 가루 낼 때 쓰는 약연(藥碾)과 유사한 형태로, 둥근 바퀴 형태의 굴대와 V자로 길쭉한 홈이 패인 몸체로 구성된다. 굴대의 중앙 양쪽으로는 손잡이가 달려있는데, 굴대를 몸체의 홈에 끼워 앞뒤로 굴리면서 차를 분쇄한다. 다마는 주로 돌로 만들어지며, 다연은 대개 금속으로 제작되지만 도자로 만든 사례도 있다.

남송대 심안노인(審安老人)이 쓴 ‘다구도찬(茶具圖贊)’(1269년)에는 그 당시 사용한 다마와 다연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이 시기에는 차를 가루 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이 유행하였던 만큼, 옛사람들이 쓴 다시(茶詩)에는 유독 차를 가루 내는 다마나 다연에 대한 표현이 많다. 그중에서도 다마의 형태나 특징에 대하여 잘 묘사한 것으로 동시대 고려의 문인이었던 이인로(李仁老, 1152~1220년)가 쓴 ‘승원의 다마(僧院茶磨)’라는 제목의 시[‘보한집(補閑集)’에 수록]가 있다. 

風輪不管 蟻行遲  풍륜(風輪)은 그저 개미처럼 더디 도는데,
月斧初揮 玉屑飛  월부(月斧)를 휘두르니 옥가루가 흩날리네.
法戱從來 眞自在  만사를 희롱함(法戱)이 실로 내게 달렸으니,
晴天雷吼 雪霏霏  마른하늘에 천둥 치고 흰 눈 펄펄 내린다네.

이 시에서 ‘풍륜(風輪)’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상을 받치고 있는 4개의 바퀴[四輪] 중 하나이다. 바퀴를 누인 듯한 다마의 둥근 몸체를 빗댄 것이다. ‘월부(月斧)’는 초승달 모양의 신성한 도끼인데, 천지를 다스리는 재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월부를 휘두른다”는 표현은 차를 갈기 위해 다마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는 행위를 묘사한 것이다. ‘법희(法戱)’란 세상 만물과 모든 현상(제법, 諸法)에 대한 말장난(희론, 戱論)을 뜻한다. 차 맷돌을 돌리면 날이 맑은데도 천둥 치는 소리가 나면서 눈발 같은 하얀 찻가루가 날리니, 그 모습이 마치 만사를 주관하여 세상을 희롱하는 듯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즉, 이 시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상을 다스리는 월부를 손에 쥐고서, 세상을 받치고 있는 바퀴를 돌리니, 만물을 가지고 노는 듯, 마른하늘에 천둥을 치게 하고 눈발이 펄펄 날리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차 맷돌을 돌리는 모습을 시적인 표현으로 우아하고도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이 시를 쓴 이인로는 어린 시절 가세가 기울어 화엄승통(華嚴僧統)이던 요일 선사(寥一 禪師)에 의해 거두어졌으며, 무신의 난(1170년)이 벌어져 정국이 혼란한 시기에도 불문(佛文)에 깃들어 몸을 피했다. 이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무신 정권에서 관직을 지냈다. 그는 송대 다인(茶人)으로 유명했던 소식(蘇軾)의 시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를 기른 요일 선사나 벗이었던 임춘(任春) 등도 유명한 다시를 남긴 다인이었다. 이러한 이인로의 출신과 사회적 배경, 그리고 그와 교류해 온 주변인과의 관계는 그가 차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불교적인 관점으로 차를 해석하고 문학적으로 녹여내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이인로의 시를 되새겨 보자. 그림 속 인물은 다마의 몸체 곁에 달린 나무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돌로 만들어진 육중한 맷돌을 돌리고 있다. 맷돌이 천둥 치듯 우르릉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면 곱디고운 찻가루가 흰 눈처럼 펄펄 휘날리며 뿜어져 나온다. 다마의 앞쪽으로는 작은 빗자루가 보인다. 이는 눈발처럼 휘날리는 찻가루를 모아주는 차 빗자루이다. 귀한 찻가루가 함부로 날아가면 안 되었기에 이 같은 차 빗자루로 잘 모아 담는 일도 중요했다. 심안노인의 ‘다구도찬’에는 이를 ‘종종사(宗從事)’라는 별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종종사(宗從事)
이름은 자불(子弗)이요, 자는 불유(不遺), 호는 소운계우(掃雲溪友)이다.
공자(孔子) 문하의 드높은 제자도 물 뿌려 비질하고 응대의 예절을 갖추거늘,
지엽적인 것이라도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할 뿐 아니라,
이미 흩어지고 버려진 것들까지 주워 모으는 일에 뛰어나다네.
살짝만 움직여도 주변의 먼지를 날지 못하게 만드니 그 공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종종사(宗從事)의 ‘종사(從事)’는 벼슬 이름이다. 차 빗자루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대개 종려나무 껍질의 고운 섬유로 만들기 때문에 종려나무의 종(棕)자와 음이 같은 종(宗)을 성으로 삼았다. 그의 이름과 자, 호는 모두 ‘남김없이 쓸어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안노인은 종종사가 아주 작은 티끌까지도 빠짐없이 쓸어 모을 수 있어 훌륭하다고 예찬하였다.

가루 내어 모은 찻가루는 ‘다라(茶羅)’에 넣고 한 번 더 걸러주는 과정에 들어간다. 다라는 찻가루를 곱게 채질하는 도구로 아주 얇고 고운 견(絹)으로 만들어진다. 비단의 미세한 구멍 사이를 통과한 것들만 모으면, 드디어 점다(點茶)를 위한 찻가루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도구와 여러 과정을 통해 정성껏 준비한 찻가루를 어떤 다구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다음 편에 이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