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유나
- 승인 2025.06.27 14:51
- 호수 1783
옆 그림은 산서성(山西省) 분양시(汾陽市)에 있는 왕립(王立)의 묘(1196년)에 그려진 벽화이다. 두 사람이 차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인데, 오른쪽 인물을 자세히 보면 왼손으로는 검은색 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솔을 들어 잔을 휘젓고 있다. 이는 ‘격불(擊拂)’이라는 행위로, 차를 점다법(點茶法)으로 마실 때 중요한 절차 중 하나이다. 점다법은 곱게 분쇄한 찻가루를 다완에 넣고 끓인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풍성한 거품을 만들어 마시는 탕법(湯法)으로, 여기에서 찻가루에 물을 부어 거품을 만드는 과정이 바로 ‘격불’이다. 격은 ‘치다’ ‘두드리다’ ‘부딪치다’의 의미이며, 불에는 ‘떨치다’ ‘털다’ 등의 뜻이 있다. 다시(茶匙)라고 하는 찻숟가락이나 다선(茶先)이라는 솔을 다완의 내부에서 두드리듯, 털어내듯 세게 휘저어 풍성한 차 거품을 만드는 행위다.
점다법 이전, 자다법(煮茶法)이 유행하던 시기에는 젓가락을 휘저어 거품을 냈다. 그러다 제다(製茶)가 발전하고, 탕법 또한 발전한 제다에 어울리는 점다법으로 이행되며 부드럽고 밀도 높은 거품에 대한 중요성과 선호도가 커지게 되었다. 이에 차 젓가락 대신 거품을 만드는 데 더욱 특화된 다시와 다선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다시에 관한 기록은 황실 어다원(御茶園)이 있는 건안 지방의 전운사(戰運使)를 지내며 소용봉단(小龍鳳團)을 만들어 송대 단차(團茶) 제다 발전에 기여한 채양(蔡襄)이 11세기 중반에 지은 ‘다록(茶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는 묵직해야 하는데, 격불할 때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황금으로 만든 것이 상등품이고, 민간에서는 은이나 철로 만든다. 대나무로 만든 것은 가벼워서 건안의 차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단차의 제다와 점다법이 제대로 자리 잡아 발전하기 시작하는 시기의 격불 도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다.
다선은 다시보다 조금 늦은 12세기 초반 기록인 휘종(徽宗)의 ‘대관다론(大觀茶論)’에서 처음 등장한다. “다선은 나이든 저죽(筯竹, 젓가락을 만드는 대나무)으로 만드는데, 몸체는 두툼하니 묵직하고 솔은 성기고도 견고해야 한다. 몸체는 튼튼하고 끝(솔 부분)은 반드시 정묘해야 하니, 늘씬한 칼과 같은 형태가 좋다. 몸체가 두툼하고 묵직하면 다룰 때 힘이 좋고 사용하기에 편하다. 솔이 성기면서도 늘씬한 검처럼 예리하면 격불할 때 비록 과하여도 물거품(이는 조밀한 차 거품과 다른 것으로, 커다란 물거품이 뜨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함)이 생기지 않는다.” 북송의 마지막 황제였던 휘종은 단차의 제다와 점다법의 발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이를 주도한 인물로, 당시에는 격불을 위해 좀 더 특화된 형태의 새로운 도구가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3세기 중후반인 남송대에 심안노인(審安老人)이 지은 ‘다구도찬(茶具圖贊)’에는 다선의 쓰임을 의인화하여 시적으로 표현한 글이 있다.
竺副帥 축부수
名善調 字希點 號雪濤公子
이름은 선조이고 자는 희점이며 호는 설도공자이다.
首陽餓夫 毅諫於兵沸之時 方 金鼎揚湯 能探其沸者几稀
수양산의 백이·숙제는 전쟁이 들끓을 때 의연히 간언하였으니
바야흐로 황금 솥에서 물이 세차게 끓음에, 그 열탕 속에 뛰어들 자 얼마나 되겠는가.
子之淸節 獨以身試 非臨難不顧者疇見爾
그대의 맑은 절개 몸소 증명하거늘, 어려움 처해서도 제 몸 돌아보지 않는 자가 아니면 누가 이를 살피리오.
다선을 의인화한 별명인 축부수(竺副帥)의 성은 ‘축(竺)’으로 대나무를 뜻한다. 다선을 대나무로 만들기 때문이다. 부수(副帥)는 벼슬의 이름으로 주장(主將)을 보좌하는 장수이다. 그의 이름은 선조(善調)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 고르다’ ‘잘 조절하다’ ‘잘 살피다’라는 뜻이다. 찻가루와 끓인 물을 섞어서 고르게 조절하고 잘 살펴서 거품을 내는 다선의 역할을 표현하였다. 그의 자(字)는 희점(希點)으로 ‘점다(點茶)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이다. 그의 호인 설도공자(雪濤公子)는 ‘눈같이 새하얀 파도의 공자’라는 뜻이다. 새하얀 찻물을 휘저어 파도치는 세찬 물결로 거품을 만드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를 곧은 충절의 상징인 백이·숙제에 빗대었으니, 다완에 끓는 물을 부음에 가장 먼저 그 탕(湯)을 살펴 휘젓는 다선의 역할을 ‘고난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옳은 바를 실천하고자 하는 절개’라 하며 예찬하였다.
점다법이 유행한 시기에는 이런 도구들로 밀도 높고 풍성한 차 거품을 만들어 내는 일을 좋은 차를 만드는 품평의 기준으로 삼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때 부드럽고 포근한 우유 거품을 선호하는 경향과 유사한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누가 더 격불을 잘하여 더 풍성하고 쫀쫀하여 오래 유지되는 거품을 만들어 내는지 겨루는 내기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를 ‘차를 겨룬다’는 뜻의 ‘투다(鬪茶)’라고 불렀다. 다시나 다선으로 흑유잔에 담긴 찻물을 휘저어 파도를 만들어서 새하얀 차 거품을 만들면, 균일하고 조밀한 거품이 풍성하게 피어나 단단하고 쫀쫀하게 엉기면 시간이 지나도 쉽게 흩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된다. 그러나 격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차 거품이 크고 균일하지 않고 성겨서 금방 깨지고 흩어진다. 이를 기준으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앞선 글들로 침추(砧椎)에서부터 다연(茶碾), 다마(茶磨), 다라(茶羅), 차 빗자루 등 정세하고 고운 찻가루를 얻기 위해 쓰는 여러 다구와 그 공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찻가루는 격불을 통하여 새하얀 차 거품을 피워내고 화룡점정을 이루는데, 다시와 다선은 그 중요한 과정을 책임지는 도구로 투다와 같은 유희 문화를 만들어 냈다. 점다 문화는 오늘날 일본의 말차(末茶, 抹茶)를 통하여 전해지고 있으며, 다선 또한 말차의 거품을 내는 격불 도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