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공지사항

[공지] [법보신문] [송유나의 역사 속 차 문화와 차 도구 이야기] 14. 차(茶)를 우려내는 다관(茶罐)에 대하여 – 자사호(紫砂壺) ①

  • 관리자
  • 2025-08-05   조회수 : 25

14. 차(茶)를 우려내는 다관(茶罐)에 대하여 – 자사호(紫砂壺) ①

  •  송유나 
  •  
  •  승인 2025.07.25 11:39
  •  
  •  호수 1787
 

자사호 장인 시대빈 손끝서 시작된 간결의 미학

명말 청초 활동…자사호 제작 기틀 정립
사용자 취향 수용 독창적 작품세계 이뤄
작품 간결·담박…예술성·기능 향상 기여

진계유(陳繼儒, 1558~1639년), (일부), 중국 상해박물관

찻잎을 다관(茶罐)에 넣고 끓인 물을 부어 우려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이 유행한 명·청대에는 의흥(宜興) 지방의 자사호(紫砂壺)가 좋은 다관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자사호가 기능적으로도 우수했을 뿐만 아니라 심미적인 측면에서도 단정하고 고아한 문인들의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문징명(文徵明), 당인(唐寅) 등 당시 문화·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며 차를 즐겼던 풍류가들의 그림에도 갈색 자사호가 자주 등장한다.

자사호는 의흥(宜興) 지방에서 나오는 고운 점토질의 자사(紫砂)라는 광물로 만드는데, 자줏빛이 도는 어두운 갈색의 자니(紫泥), 붉은 홍니(紅泥)와 밝은 연두색이 감도는 녹니(綠泥) 등 다양한 색상으로 세분된다. 자사의 입자는 아주 곱고 치밀하여 찻물의 보온성을 유지하는 데 적합하다. 아주 고운 입자를 이루기에 표면을 부드럽고 매끈하게 성형할 수 있어 따로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 작은 입자의 내부는 미세한 구멍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통기성 또한 뛰어나고, 잡내를 흡수하여 차 맛을 좋게 해 준다.

명 숭정(崇禎) 13년(1640년)경 주고기(周高起)가 쓴 ‘양선명호계(陽羨茗壺系)’에 따르면 금사사(金沙寺)의 한 노승(老僧)이 자사로 도기를 잘 만들었다고 한다. 이 절에 공부하러 온 이산(頤山) 오공(吳公)의 심부름꾼이었던 공춘(供春)은 노승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따라서 호를 만들었다. 그것은 어두운 밤갈색을 띠고 형태는 돈후하고 방정하였다. 손으로 두드려 만들 때 생기는 지문 자국도 거슬림 없이 은은하였으니, 공춘의 호는 세간에 최고라고 칭송받을 만하였다.

그 뒤로도 동한(董翰), 조량(趙粱), 원창(元暢), 시붕(時朋) 등 자사호를 잘 만드는 명가(名家)들이 나타났다. 명 만력(萬曆, 1573~1620년) 연간부터 청 순치(順治, 1644~1661년) 연간 사이에 활동한 시대빈(時大彬)은 시붕의 아들로서 공춘으로부터의 정통성을 이어 자사호 제작의 기틀을 세웠다. 허차서(許次紓)가 쓴 ‘다소’(茶疏)를 보면 “예전에는 공춘의 호를 숭상했지만, 요즘은 시대빈이 만든 호가 극히 좋아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긴다”고 하였을 정도로 크게 이름이 났다.

시대빈의 작품에는 화려함보다는 간결하고 담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거친 질감을 추구하여 투박한 듯 보이지만 기백이 있어 장중하고도 우아했다. 작업 활동 초창기, 그는 공춘의 작품 형태를 모방하고 명 전반기에 선호된 커다란 호를 주로 제작하였다. 그러나 소주(蘇州)와 상해 근처를 유람하고 진계유(陳繼儒, 1558~1639년)를 비롯한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당시 차 문화의 주요 향유층이던 그들의 취향과 안목을 작품에 반영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작은 자사호를 제작하였다. 실제 ‘양선명호계’를 비롯한 명·청대의 기록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다관은 작아야 향이 흩어지지 않고,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시대빈과 교유하며 그의 작업 방향에 영향을 준 진계유(陳繼儒, 1558~1639년)는 명대 유명 문인 화가였다. 그는 상해 출신으로, 문인 중심의 관념적 수묵 산수가 특징인 남종화(南宗畵)의 개념을 세운 동기창(董其昌, 1555~1636년)과 뜻을 함께하는 절친이었다. 그의 호는 미공(眉公)으로 시·서·화 모두에 능하였는데, 북송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서예가였던 소식(蘇軾)과 미불(米芾)의 서체를 계승하였다. 벼슬에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평생을 문필과 예술 활동에 전념한 그는 차를 좋아하여 하수방(夏樹芳)의 ‘다동’(茶董)을 보충한 다서(茶書)인 ‘다동보’(茶董補)를 쓰기도 하고, ‘태평청화’(太平清話) 등 자신의 저서로 차에 대한 여러 기록을 남겼다.

진계유는 강남의 심원한 산과 숲, 물과 안개로 둘러싸인 고요하고 습윤한 산수풍경을 담채의 수묵으로 표현하는 데에도 출중하였지만, 여타 문인들이 오래도록 사랑한 사군자(四君子) 중에서도 매화를 유독 좋아하여 수많은 매화 그림을 그렸다. 위의 작품은 중국 상해박물관에 소장된 ‘매죽수선시화책’(梅竹水仙詩畵册)에 수록된 것이다.

문인의 기호를 반영하듯 시대빈의 작품 중에서도 매화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자사호이다. 시대빈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근육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볼록하고 팽만한 느낌의 근문(筋紋) 형태를 잘 만들었다는 점이다. 근문형의 자사호는 호박의 표면이 세로줄을 따라 울룩불룩하게 솟아있는 모습이나 도톰한 꽃잎에 감싸인 꽃봉오리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 또한 피어나기 직전의 매화 꽃봉오리를 묘사한 근문형 호이다. 담백하고 소박한 듯하지만,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것만 같은 생동의 기운을 머금은 풍만함이 돋보인다.

근문형 자사호, 시대빈(時大彬),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근문형 자사호, 시대빈(時大彬),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 호를 자세히 보면 갈색의 바탕에 하얗거나 어두운 점들이 콕콕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대빈은 거친 질감을 선호하여 주사토(硃沙土), 백정석(白晶石), 모래 등을 배합한 점토로 다관을 만들었다. 다양한 입자가 섞여 있어 호의 표면에서 여러 종류의 자잘한 입자들이 드러나고,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아름다운 효과를 만들어 냈다. 이는 시대빈 작품의 특징 중 하나로, 질박하면서도 고아한 느낌을 잘 살려주는 기법이다.

‘양선명호계’에 따르면 처음에 시대빈은 서예에 능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그의 작품에 글씨를 새겼으나, 곧 스스로 서예를 배워 직접 호에 글씨를 새겨넣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단정한 서체는 나름의 격조가 있어서 그의 호가 사랑받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시대빈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새로운 제작 방식을 고안하고, 사용자의 요구와 취향을 수용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립해 나갔다. 이는 품격 있는 다관으로서 자사호의 위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훗날의 자사호 제작 방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