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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보신문] [송유나의 역사 속 차 문화와 차 도구 이야기]15. 문인의 취향을 담아낸 차도구에 대하여 – 자사호(紫砂壺) 2

  • 관리자
  • 2025-08-21   조회수 : 16

15. 문인의 취향을 담아낸 차도구에 대하여 – 자사호(紫砂壺) 2

  •  송유나 
  •  
  •  승인 2025.08.18 11:19
  •  
  •  호수 1789
 

문인과 장인의 미적 감각이 빚어낸 아취의 절정

청대 중반 활약 진홍수, 장수 비결은 낭만·정취 좇는 삶 노래
몽환적 분위기의 시구에 어울리는 반달 모양 ‘반월호’ 제작
양팽년과 협업, 18가지 만생호 디자인하며 자사호 제작 주도

진홍수가 쓴 ‘예서칠언련(隸書七言聯)’과 그가 양팽년과 협업해 제작한 자사호 중 하나인 반월호(半月壺).

중국 의흥(宜興) 지방에서 나오는 자사(紫砂)라는 광물로 만든 자사호(紫砂壺)는 찻잎을 다관(茶罐)에 넣고 끓인 물을 부어 우려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이 유행한 명·청대에 꾸준히 애호되었다.

미세한 입자의 자사로 제작한 자사호는 찻물의 보온성을 잘 유지하면서도 통기성이 뛰어나 차 맛을 좋게 해준다. 또한 가소성이 좋아 여러 형태로 섬세한 성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예술관과 기예를 펼치기에 적합했다. 이로 인해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관념과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자사호가 만들어졌다.

명대의 자사호는 금사사(金沙寺)의 노승(老僧)으로부터 공춘(供春), 그리고 동한(董翰), 조량(趙粱), 원창(元暢), 시붕(時朋) 등 명사대가(名四大家)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명대 말에서 청대 초반에는 시대빈(時大彬)이 특히 이름을 알렸고, 그의 제자인 이중방(李仲芳), 서우천(徐友泉)과 함께 자사호 제작의 삼대 거장으로 불렸다. 청대 강희(康熙, 1662~1722) 연간에는 진명원(陳鳴遠)이 호박, 호두, 땅콩, 나무둥치 등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작품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청대 중반인 가경(嘉慶, 1796~1820), 도광(道光, 1821~1850) 연간에는 진홍수(陳鴻壽, 1768~1822)라는 인물이 등장하였는데 호는 만생(曼生)으로, 청나라의 관리이자 화가, 서예가였다. 전각(篆刻)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서령팔가(西泠八家)’ 중 한 명이기도 하였다. 서령팔가는 항주 일대에서 활동한 8명의 전각가를 지칭하는 것으로 절강파(浙江派), 절파(浙派)라고도 한다. 이들은 진(秦)과 한(漢)대 인장(印章)의 양식을 따랐으며, 칼을 활용한 능숙한 조각 솜씨로 절강 지역의 전각 유파를 형성하였다.

위의 작품은 진홍수가 예서(隸書)체로 쓴 두 구절의 칠언시[‘예서칠언련(隸書七言聯)’, 대만국립고궁박물원 소장]이다. 예서는 금석문이나 전각문에 활용되었던 전서(篆書)를 붓글씨로 쓰기 편하도록 간소화한 서체이며, 진대(秦代)에 완성되어 한대(漢代)에 유행하였다. 서예가이자 전각가였던 만큼 그는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銕琴在牀月在室 胡蜨入夢飌入幃
거문고는 평상 위에 있고, 달빛은 방 안으로 스며드는데,
호랑나비 꿈속으로 들어가고, 바람은 휘장 안으로 들어오네.

고상한 아취(雅趣)가 넘치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시이다. 거문고를 옆에 두고 방 안에 달빛이 스며드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호접몽(胡蜨夢)에 빠져드는 꿈과 현실의 몽롱한 경계를 그리고 있다.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든다”는 시구처럼 진홍수가 달을 방안으로 들일 수 있도록 만든 듯한 작품이 있으니, 바로 반월호(半月壺)이다. 반달 모양으로 생긴 이 자사호는 한나라 시대 둥근 와당(瓦當)의 절반을 형상화한 것과도 같아서 ‘반와호(半瓦壺)’라고도 불린다. 진홍수의 호를 따 그가 만든 자사호를 ‘만생호(曼生壺)’라고 하는데, 반월호는 그를 대표하는 18가지 만생호[曼生十八式] 중 하나이다. 위 작품은 중국 상해박물관 소장으로, 호의 전면에는 ‘연년(延年)’이라고 쓰여 있다. ‘연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해를 잇다’인데, 이는 곧 ‘장수하다’라는 의미이다. 호의 반대쪽 면에는 짧은 시구와 만생호임을 밝히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不求其全 迺能延年
飮之甘泉 春蘿清玩
曼生銘 弟二千六百十一壺
완전함을 구하지 않으면 장수할 수 있으니
감천(甘泉)을 마시며 봄 덩굴 청아한 아취를 완상(玩賞)한다네.
만생(曼生)이 새긴 제 2611번째 호이로다.

여기에서 ‘감천’(甘泉)은 차를 의미한다. 완벽함을 좇는 현실 속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차를 마시고 아취를 즐기며 꿈결을 노닐듯 살아가는 것이 장수하는 길임을 읊고 있다. 이 내용과 분위기는 위의 칠언시와도 통한다. 이렇게 낭만과 정취를 좇아 꿈꾸듯 살아가는 삶을 노래한 진홍수의 행보 또한 남달랐다. 그는 자신을 보편적인 범주의 문인으로 한정 짓지 않고, 자사호 제작에 주도적으로 관여함으로써 자신이 꿈꾸는 예술과 차의 세계를 실현하였다. 반월호에 ‘만생이 새긴 제 2611번째 호’라고 명시한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자사호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호의 바닥 면에는 진홍수 집의 거실 이름인 ‘아만타실(阿曼陀室)’이라는 인장이 찍혀있고, 호의 손잡이 아랫부분에는 ‘팽년(彭年)’이라는 이름이 인각되어 있다. 팽년은 자사호 장인 양팽년(楊彭年)을 의미한다. 진홍수는 가경(嘉慶) 21년(1816) 의흥에 인접한 율양현의 지방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양팽년과 연을 맺으며 자사호 제작을 본격화하였다. 진홍수가 디자인한 18가지의 만생호를 실물로 제작한 인물이 바로 양팽년이다. 진홍수는 자신의 깊은 안목과 예술관을 담아 다양한 형식의 자사호를 설계하였고, 양팽년은 뛰어난 솜씨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문인으로서 시·서·화에 능했던 진홍수의 문예적 소양과 재주, 그리고 전각 작업으로 숙달된 도각(刀刻) 실력은 양팽년과의 협업으로 만생호에서 조화롭게 구현되어 아취(雅趣)가 넘치는 다관을 탄생시켰다. 서화와 달리 역사 속에서 공예품과 관련해 그것을 제작한 장인이나 작가 개인이 작품의 전면에 드러난 경우가 드물다. 그럼에도 자사호는 공예에 있어서 작가주의 개념이 강하게 나타난 독특한 사례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제작과 사용의 과정에서 그 당시 문화와 예술을 주도한 문인들과 강한 접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