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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도의 원류를 찾아 <5·끝> 제다법과 초의선사

  • 관리자
  • 2025-10-26   조회수 : 1

한국 다도의 원류를 찾아 <5·끝>제다법과 초의선사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25.10.24 10:36

찻잎에 깃든 천년 숨결에 수행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이제관의 〈오수도(午睡圖)>. 대나무 그늘 아래 선비가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과 여유를 담은 그림으로 차(茶)와 선(禪)이 지향하는 고요한 마음의 세계를 상징한다. 지본담채, 122×56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제관의 〈오수도(午睡圖)>. 대나무 그늘 아래 선비가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과 여유를 담은 그림으로 차(茶)와 선(禪)이 지향하는 고요한 마음의 세계를 상징한다. 지본담채, 122×56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다도의 뿌리는 제다에서 비롯

불의 온도, 차의 생명을 결정

초의선사 한국제다의 길 열어

오랜 세월 속에서 형성된 차 문화의 독특한 문화 결은 시대마다 차를 즐겼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유산이다. 더구나 나라마다 같은 듯 다른 차 문화의 특성을 만들어낸 토대는 차 애호층의 안목과 이상, 그리고 풍토성을 반영한 것이다. 아울러 정치, 종교, 사회, 경제력 등 시대적 환경도 차 문화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차 문화 형성의 근원적 토대는 무엇일까. 바로 좋은 차의 생산 능력이다. 명차는 심신의 평정과 향상을 도모해 주기 때문에 오래 세월 명차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치열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제다인의 제다에 관한 안목은 차 문화 특징을 구성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다사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좋고 나쁜 차를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론 애호층이 추구한 차의 순수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다란 무엇인가. 바로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차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이를 조다(造茶), 혹은 제다(製茶)라고 한다. 그런데 제다에서 중요한 것은 불이나 증기, 햇빛 등을 이용하여 차 싹의 독소를 중화시켜 차의 진수를 갈무리한다는 점이다. 바로 찻잎의 거친 독성을 불이나 중기, 등을 활용하여 중화, 순화시켜 찻잎에 내재된 색향미와 기세를 잘 드러냄으로써 차의 효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결국 찻잎은 제다 공정 과정을 거치면서 차의 효능을 정밀하게 압축시켜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명차로 바뀌는 과정인 셈이다.

좋은 차, 손끝 감각에서 시작

채다의 순간에 명차가 태어나

비 내린 날엔 찻잎 따지 않아

한국의 차 문화는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제다에 관한 직접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다만 초의선사의 <동다송>에 제다 공정이 상세하므로, 이를 근거로 녹차(잎차)를 만드는 공정을 토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말한 제다 공정을 살펴보면, 1. 찻잎 따기(채다, 採茶), 2. 찻잎 고르기, 3. 찻잎 익히기(살청, 殺靑), 4. 비비기(유념), 5. 마지막 말리기(재건, 再乾) 및 6. 차를 보관하는 과정(장다, 藏茶), 6차례의 공정을 거친다. 초의차의 공정에서 뜨거운 온돌방에서 하루밤 재우기는 범해선사의 <초의차>를 통해 확인된다.

녹차 제다의 핵심 사항을 열거하면, 1번째 과정은 차 싹 따기(채다)이다. 이는 명차와 하급 차를 결정하는 첫 관문이다. 채다의 시점은 곡우나 한식, 입하 등 절기에 따라 정하는 경우와 찻잎의 크기에 따라 결정한다. 바로 작설(雀舌), 맥아(麥芽), 일창일기(一槍一旗), 혹은 일창이기(一槍二旗)는 찻잎의 모양이나 크기를 의미한다. 덩이차인 병차와 단차, 잎차인가에 따라 채다 시기를 결정한다. 채다할 때 날씨도 중요한 변화로 작용한다. 만약 구름이 많거나 비기 내리면 차를 따지 않는데, 이는 차에서 물 냄새가 나고 차의 맛과 향기, 기세가 탁하고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2번째 찻잎 고르기이다. 따온 차 잎에서 묵은 잎과 잡풀, 상처가 난 차 잎을 가려낸다. 백합(白合)이나 꼭지를 따낸다. 정밀하고 튼실한 찻잎만을 사용한다. 만약 좋지 않은 잎이 들어가면, 차의 싱그러운 맛과 향색, 성성한 기세를 품은 차를 만들 수가 없다.

온돌방 숙성하며 찻잎 숨 골라

마지막 완성의 미학인 차 보관

맑고 투명한 차에 깃든 고요함

3번째 공정은 살청이다. 이때 참나무나 대나무 등으로 화력 조절한다. 무쇠솥의 온도가 섭씨 250도~300도 내외가 되면, 대략 300그램 정도 생잎을 넣고 대솔로 급히 덖어낸다. 살청에서 찻잎이 덜 익으면 아린 맛과 향이 무겁고, 풀 내가 나며 쓰고 떫은맛이 난다. 너무 익으면 차의 기세와 맛, 향이 탄력을 잃게 되며 색이 어둡다.

특히 살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찻잎을 태우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 잎이라도 타면, 차의 진기가 사라진다. 실제 제다인의 순발력과 통찰력은 살청에서 빛난다. 찻잎의 익는 정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당나라 노동이 칭송한 <칠완다가(七碗茶歌)>의 공덕을 드러낼 수 있는 차를 만드는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목이 높은 제다인은 불을 잘 다룰 줄 아는 연금술사이다. 신선이 되기 위해 단약을 만드는 연금술사는 불의 조화를 장악한 사람이다.

4번째 공정은 찻잎 비비기이다. 찻잎의 세포벽에 상처를 내서 차가 잘 우러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5번째 공정은 재건인데 무쇠솥의 온도는 대략 섭씨 70도~100도 내외에서 차를 말린다. 재건할 때 솥 온도의 편차는 섭씨 0.5도 내외의 온도 사이에서 차를 말린다. 이때 솥의 온도가 너무 뜨거우면 차가 타므로 섬세한 온도 조절이 요구된다.

6번째 공정은 뜨거운 온돌방에서 하루를 잠재운다. 이 공정의 초의선사 제다법의 특징으로 범해선사의 <초의차>를 통해 확인되었는데, 이는 완성된 차의 열기를 잠재우고 잔류 수분을 없애기 위함이다. 7번째는 차 보관이다. 현재 차의 포장재가 발달하여 은박지에 포장해 두는데, 항상 실온에 보관한다. 만약 냉장고에 차를 보관하면 냉기가 차에 침투하므로 실온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선 후기 대둔사의 초의선사나 아암스님은 찻잎을 무쇠솥에 덖어낸 살청 공정을 거친 녹차를 만들었다. 좋은 차는 맑고 경쾌하며 환한 난향이 피어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속이 시원해진다. 차를 마신 후 단침이 조수처럼 입안에 고이고 눈이 밝아지고 머리가 경쾌해지며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감싸는 듯하다. 잘 만든 차에서는 탁하거나 쓰고 떫은맛과 풋내가 나지 않는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출처 : 불교신문(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