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유나
- 승인 2025.10.31 10:59
- 호수 1799

왼쪽 그림은 명대 화가였던 두근(杜堇, 생몰년 미상, 1465~1509년경 활동)의 작품 ‘매하횡금도(梅下橫琴圖)’(상해박물관 소장) 축(軸)이다. 그림을 보면 아득하게 높고 험준한 바위산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한 선비가 기이하게 구부러진 매화 고목에 올라앉아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선비는 섬세한 손끝으로 거문고를 타며 높은 고목에 핀 매화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의 곁에는 한 시동이 화로에서 찻물이 끓는 상태를 집중하여 살피고 있고, 다른 시동은 받침대에 찻잔을 받쳐 들고 차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선비의 시선을 따라 매화를 구경하고 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 매화나무를 벗 삼아 음악을 즐기면서 차를 마시려 하고 있으니 참으로 운치가 넘치는 풍경이다.
이런 풍류는 명대 전예형(田藝蘅, 1524~1591)이 쓴 ‘자천소품(煮泉小品)’에서도 드러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사람들은 꽃을 마주하고 차를 마시는 것이 풍취를 해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왕안석(王安石, 북송대 정치인)의 시에서는 ‘금곡(金穀)의 수많은 꽃 앞에서 함부로 차를 끓이지 말라’ 하였으니, 이는 생각이 꽃에 가 있어 차를 생각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나(전예형)는 왕안석이 꽃에 대해 한 이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차 한 잔을 들고 산의 꽃을 마주하여 마신다면 마땅히 풍취를 더 돋울 수 있으리니, 또한 어찌 꼭 고아주(羔兒酒, 새끼 양을 고아 빚은 술, 시어로는 ‘귀한 술’을 의미함)가 필요하겠는가?” 이 글의 내용에 따르면 당·송대에는 꽃을 보며 차를 마시면 차에 대한 집중도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차를 마시는 의미가 퇴색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명대 사람이었던 필자(전예형)는 꽃을 곁에 두고 차를 마시는 일이 오히려 풍취를 돋울 수 있어 좋다고 하였다.
이는 명·청대의 보편적인 견해로 이 시기 문인들은 차를 마시고, 꽃을 기르고 감상하며, 골동품을 완상하는 등의 취미를 즐겼다. 이러한 종류의 취미 활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명·청대를 지나며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훼에 대한 명대 사람들의 관심은 꽃에 대한 백과사전으로 유명한 왕상진(王象晉)의 ‘군방보(群芳譜, 二如亭群芳譜)’에서도 드러나는데, 청대에는 ‘광군방보(廣群芳譜)’로 증보(增補)되며 널리 읽혔다. 명대 시인이었던 원굉도(袁宏道, 1568~1610) 역시 꽃 감상법을 적은 ‘병화사(甁花史)’를 지었으니, 그는 “꽃을 완상하고 차를 즐기는 것이 제일이요,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다음이고, 술을 즐기는 것은 아래다”라고 하였다. 이는 위에서 전예형이 말한 견해와 아주 비슷하다.
위 그림을 그린 두근은 강소성(江蘇省) 진강(鎭江) 출신으로, 이 시대 강남 지역 문인 화가들과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이들은 대개 일찍이 과거에 낙방하여 요직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풍족한 강남 경제의 부흥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문예 생활을 즐기며 그림으로 삶을 이어갔다. 두근을 대표하는 또 다른 작품(오른쪽 위)인 ‘완고도(玩古圖)’(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축에는 아름다운 야외 풍경 속에서 여러 인물이 각종 고동기(古銅器)와 서책, 그림 등을 늘어놓고 감평하며 향을 피우고, 꽃을 감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같은 취미생활을 즐기며 차를 마시는 일이 당시 사람들이 꿈꾸는 아취 넘치는 풍류였다.
당시 분위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그림은 진홍수(陳洪綬, 1599~1652)의 ‘한화궁사도(閑話宮事圖)’(심양고궁박물원 소장, 오른쪽 아래) 축이다. 이 그림은 한나라 때 미녀로 유명한 조비연(趙飛燕)의 궁중 생활을 그린 것이지만, 괴석으로 된 탁자 위에 펼쳐진 찻자리는 진홍수가 살았던 명말 청초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찻잎을 넣고 차를 우려내는 반원형의 자사호(紫沙壺)와 백자 찻잔은 당시 널리 애용된 다구의 전형이다. 그리고 살얼음이 깨진 듯한 굵은 빙렬문(氷裂紋)이 드러난 가요(哥窯, 송대에 이름난 절강성 지역의 도자기 가마) 스타일의 병에 꽂힌 꽃가지를 통해 골동품에 대한 애호와 화훼 취미를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도석미인화(道釋美人畵)를 즐겨 그렸던 진홍수의 다른 여러 그림에서도 이런 형태와 구성의 찻자리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제까지 소개한 글과 그림들로 미루어볼 때 명·청대에는 차를 마실 때 찻자리에 꽃을 놓고 감상하는 일이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골동품을 완상하고 꽃을 기르며 감상하는 문화가 유행하였는데, 특히 일본에서는 일본 다도를 집대성한 센 리큐(千利休, 1522~1591)의 시대를 거치며 꽃이 찻자리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가 되었다.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찻자리의 목적이나 의미에 어울리는 꽃을 적당한 화기(花器)에 장식하고자 하였으며, 꽃의 존재가 찻자리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나름의 금기나 규칙 등이 존재하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찻자리에서 직접 꽃꽂이를 하면서 차를 즐기는 즐거움을 더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찻자리에서 꽃은 시대에 따라 의견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였지만 차를 마시는 행위에 풍취를 돋우는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넓은 범위에서 다구(茶具)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3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