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유나
- 승인 2025.11.14 11:38
- 호수 1801

오대 말에서 북송 초의 사회·문화적 면면을 잘 담고 있다고 전해지는 도곡(陶穀, 903~970)의 ‘청이록(淸異錄)’에는 차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차벽(茶癖)에 빠졌다고 칭해지는 자화(子華)가 방에 육우의 초상을 걸어두고 손님을 맞이하곤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남송 대 편찬되어 당시의 풍속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백과사전적 전집인 ‘합벽사류(合壁事類)’에 따르면 어느 관청의 차를 보관하는 창고에는 육우의 초상을 신상처럼 그려 모셔두었다고 한다. 이 사료들에 의하면 송대에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청 등에서 다사(茶事)가 원활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육우의 초상을 걸어두는 풍습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당·송대에 이어 명·청대까지 귀족이나 문인들이 함께 모여 서화와 골동을 완상하고 음악, 꽃과 향 등을 감상하는 풍류가 있었다. 이처럼 고상한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을 아회(雅會)라고 하였는데,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송인박고도(宋人博古圖)’ 축(軸)을 통해 그 모임의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그림은 송나라 사람들이 모여 골동품과 서화를 감상하는 모습을 주제로 삼았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나 화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乾隆帝)와 가경제(嘉慶帝), 그리고 청내부(淸內府)의 인장이 찍혀 있다. 이런 모임을 그린 그림을 대개 아회도(雅會圖), 아집도(雅集圖), 박고도(博古圖)라고 부른다. 아회도의 도상은 기록화의 개념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십팔학사(十八學士)와 같은 역사 속 인물들의 모습이나 일화를 상상하여 그린 고사인물화(古事人物畵)에서도 자주 활용되며, 명·청대에는 이런 취미를 즐기는 화가 본인과 지인에 대한 묘사, 또는 그러한 생활을 꿈꾸는 이상향의 표현으로 자주 그려졌다.
아회도의 한편에는 차를 준비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위 그림 속 오른쪽 하단에도 붉은 숯이 가득 담긴 사각의 대형 화로에 부젓가락이 꽂혀 있고, 찻물을 끓이는 탕관(湯罐)이 올려져 있다. 그림 가운데 커다란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차를 기다리며 길게 펼쳐 든 족자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서화 두루마리들이 올라와 있고, 앞쪽의 시동이 또 다른 두루마리 뭉치들을 가져다 나르고 있다. 그 뒤쪽에서는 사람들이 각종 골동품을 가지고 와 진열하고 있다. 완물의 취미와 찻자리를 함께하는 문화는 특히 명·청대를 지나며 더 성행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비슷한 시기 일본에도 전해져 가라모노(唐物,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귀한 물품들을 지칭하던 용어)를 진열하고 완상하는 취미가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무로마치 막부(1336~1573)의 쇼군인 아시카가(足利) 가문의 손님맞이 사교 공간에 있던 소장품과 작품 진열에 대한 기록물인 ‘군다이칸소초키(君臺觀左右帳記)’(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에서 당시 일본의 가라모노 애호 현상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일본의 상류층은 화려한 중국산 도자기, 공예품, 각종 서화 등으로 서원[書院, 선종 사찰과 귀족들의 주거 양식이 혼합된 무사들의 정주 및 접객 공간으로 서재와 도코노마(床の間)라고 하는 진열 공간을 둠]을 꾸미고 이것들을 완상하며 차를 마셨는데, 이를 ‘서원차(書院茶)’라고 하였다. 당시 찻자리에서는 남송 대 선종 승려이자 화가였던 목계(牧谿, 13세기 후반에 활동)의 그림이 인기를 끌었다.
무라타 주코(村田珠光, 1422 또는 1423~1502)와 센 리큐의 스승인 다케노 조오(武野紹鷗, 1502~1555)에 의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서원차와 대비되는 선풍(禪風)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와비차(わび茶)’가 등장한 이후로도 목계의 그림은 꾸준히 찻자리에서 애용되었다. 와비차를 완성하였다고 일컬어지는 센 리큐(千利休, 1522~1591)의 다회에도 목계의 그림을 걸었다는 기록들이 종종 등장한다. 서원차에 비하면 훨씬 간소하고 수수하지만, 와비차에서도 작은 다실에 도코노마라고 하는 진열 공간을 두고 목계와 같은 선승(禪僧)의 회화나 묵적(墨蹟, 선승의 친필 글씨), 와카(和歌, 5음과 7음으로 구성된 일본 전통의 정형시) 등을 족자로 걸고 꽃과 향, 다구를 배치하였다.
센 리큐의 제자였던 난보 소케이(南方宗啓)의 ‘남방록(南方錄)’은 리큐가 열었던 다회에 대한 기록과 리큐로부터 배운 다도의 개념과 원칙 등이 담긴 다서이다. 이 책에서는 “다도구의 제일은 족자이다. 손님과 주인이 함께 일심득도(一心得道,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인데, 묵적(墨跡)이 제일”이라고 하였다. 묵적은 주로 부처님의 말씀이나 법어(法語), 선문답(禪門答), 시문 등을 주제로 하였고, 서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글귀에 담긴 의미의 깊이, 그리고 필자의 풍격과 덕이 드러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겼다. 실제로 센 리큐가 다회에서 가장 많이 건 족자는 묵적이며, 그중에서도 ‘일기일회(一期一會)’라고 쓴 묵적을 즐겨 걸었다고 한다. ‘일기일회’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나 만남’이다. 매 순간의 찻자리가 매번 돌아오는 동일한 것이 아닌, 오직 한 번뿐이므로 최선을 다해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의미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 걸어두었던 족자나 서화 작품들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는 모든 찻자리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다구는 아니지만, 시대나 지역, 상황에 따라 기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과 운치를 더하는 요소가 되거나 선(禪)적인 깨달음에 이르도록 돕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찻자리의 의미와 깊이를 더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송유나 clda0cho@gmail.com
출처: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3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