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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불교신문] 편지 속에 살아난 초의선사, 차와 인연으로 잇다

  • 관리자
  • 2026-10-17   조회수 : 6

편지 속에 살아난 초의선사, 차와 인연으로 잇다

  • 이성수 기자
  • 승인 2026.09.16 14:01

국립광주박물관 초의선사 유묵 번역집 발간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박동춘 박사 기증

변지화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간찰,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변지화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간찰,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 대흥사의 선승이자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 스님이 남긴 방대한 저술과 다맥(茶脈)은 오늘날에도 한국 차 문화의 뿌리로 언급되지만, 정작 스님이 어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많지 않았다. 이런 갈증을 채워줄 학술적인 성과가 최근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최흥선)에서 나왔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기증한 초의선사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학술총서 『박동춘 기증 초의선사 유묵 번역집 간찰편』이 마침내 상·하 두 권으로 완간된 것이다.

간찰(簡札)은 개인 간에 오간 사적인 편지다. 문집이나 관찬 기록이 다듬어진 ‘공식 언어’라면, 간찰은 다듬어지지 않은 ‘생활의 언어’에 가깝다. 이번에 발간된 하권에는 초의와 교유했던 경향(京鄕) 인사 86건 155점 가운데 53건이 새롭게 수록되었다. 안부를 묻는 짧은 인사말 속에도, 차를 청하고 보내는 소소한 왕래 속에도, 19세기 유불(儒佛)이 교유하던 지식 사회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은 번역집 서문에서 초의의 생애를 바꾼 결정적 만남으로 완호·다산·추사 세 인물을 꼽는다. 1802년 겨울 운흥사에서 완호를 만나 선맥의 토대를 다진 초의는, 1809년 대흥사로 옮겨 완호스님의 법제자가 되면서 ‘초의’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후 선차(禪茶)와 불화(佛畵) 등 사찰 문화를 두텁게 하는 대흥사를 대표하는 수행자가 되었다.

다산 정약용과의 만남은 초의선사에게 시학과 유가서(儒家書), 역사관을 익히는 인연이 되었다. 초의선사는 다산을 두고 “하늘이 맹자의 어머니 같은 이웃을 내려주셨다”고 감회를 남겼을 정도다. 1815년 학림암에서 정학연의 주선으로 만난 추사 김정희와는 신분을 넘어선 ‘평생의 벗이자 도반’이 되었다. 특히 추사의 제주 유배 시절 차와 음식, 약초, 종이를 보내 심신을 위로한 이가 초의선사였다는 사실은, 조선 후기 유불교유(儒佛交遊)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꼽힌다. 어려움에 처해도 외면하지 않은 의절(義絶)은 명리와 이해에 움직이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교훈으로 다가온다.

초의와 완호·다산·추사 ‘우정’

선리논쟁의 한 축, 학승 초의

다산가와 학연, 그리고 ‘다풍’

정대무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간찰. 사진제공=국립광주박물관.
정대무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간찰. 사진제공=국립광주박물관.

이번 간찰집에서 특히 주목되는 자료는 초의가 이 병사(兵使)에게 보낸 편지다. 북학파 인사들과 불교 사상을 깊이 논한 정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초의선사는 단순한 다승(茶僧)이 아니라 조선 후기 선리(禪理)논쟁을 이끈 학승(學僧)이었다. 백파(白坡)선사가 <선문수경>에서 조사선·여래선·의리선의 삼종선(三種禪)을 주장하며 선(禪)의 위계를 세우려 하자, 초의선사는 <선문사변만어>를 지어 이종선(二種禪)을 제창하며 모순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논쟁은 두 문파의 제자들에게까지 이어져 100여 년간 지속된, 조선 후기 불교사상사의 굵직한 사건이었다.

간찰집은 초의와 다산의 학연이 그의 자제와 손자 대까지 이어졌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준다. 아들 정학유, 손자 정대무의 간찰이 증거다. 아울러 초의가 만든 차를 지방 관리와 아전들까지 얻고자 했다는 기록은, 초의선사의 차가 문인 사회를 넘어 지방 행정 사회에까지 명성을 떨쳤음을 보여준다. 특히 <동다송>의 원제가 <동다행>이었으며 헌종3년(1837) 변지화의 요청으로 내용이 수정·보완되었다는 사실이 변지화의 간찰을 통해 새롭게 규명된 점은, 한국 유일의 다서(茶書) 성립 과정을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은 “인생의 고락을 함께 공유했던 이들의 우정을 통해, 삶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단초는 결국 사람과의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밝혔다. 단지 한 선승의 인간관계를 넘어, 신분과 종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지탱했던 조선 후기 지식 사회의 한 단면을 되짚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국립광주박물관은 2023년 시회첩 <가려유사첩>, 2024년 <시문편>에 이어 이번 <간찰편> 완간으로 초의선사 유묵 번역사업의 결실을 맺었다. 서울대 김경숙 교수가 고증과 번역을 맡아 완성도를 더했다. 그간 문집과 저술을 통해서만 조명되던 초의선사의 상(像)이, 직접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훨씬 입체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번에 나온 번역집은 국립광주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어, 향후 초의선사와 조선 후기 차 문화·불교사상사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출처 :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4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