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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불교신문] “다산 극찬한 쌍계사 만허스님 차, 조선 후기 사찰 차(茶) '격조' 보여줘”

  • 관리자
  • 2026-10-21   조회수 : 2

“다산 극찬한 쌍계사 만허스님 차, 조선 후기 사찰 차(茶) '격조' 보여줘”

  • 이성수 기자, 이천운 경남지사장
  • 승인 2026.10.21 10:58

쌍계사, 차나무 식재 1198주년 기념 세미나…‘제다법과 차의 명칭’
박동춘 이사장 “제다 이끈 주역은 수행승…중정 지킨 살청이 핵심”

차 문화가 쇠락하던 조선 후기에도 쌍계사에서는 명차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편지와 시를 통해 쌍계사 만허스님의 차를 “용정이나 두강도 이보다 낫지 않다”고 칭송한 사실이 확인됐다.

제13교구본사 쌍계총림 쌍계사(주지 지현스님)는 10월 20일 오전 10시 쌍계사 문화예술관 대강당에서 차나무 식재 1198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올해는 흥덕왕 3년(828) 대렴공이 당에서 가져온 차 씨를 지리산에 심은 지 1198년이 되는 해다. ‘제다법과 차의 명칭’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는 안대회 성균관대 석좌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이사장이 ‘제다법의 변천과 조선 후기 사원 차의 흐름’을 발표했고, 정영희 동국대 연구교수와 정서경 국립목포대 연구전임교수가 지정 토론에 나섰다.

개회식에서 쌍계사 주지 지현스님과 사단법인 진감초의다맥 한국선다회 이사장 영담스님(쌍계사 회주)은 인사말에서 “화개골은 차나무 시배지이자 초의선사가 동다송을 완성하고 다신전을 지은 곳이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최고의 차’라고 극찬한 대한민국 차의 본가”라면서 “이번 세미나가 화개골의 제다 방식과 전통 차 문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박동춘 이사장은 발표에서 한국 차 문화를 이끈 주역으로 사찰의 수행승을 꼽았다. 신라의 도당구법승(渡唐求法僧)들이 선종 수행법과 함께 차를 들여왔고, 대렴공이 차 씨를 가져온 뒤에도 사찰을 중심으로 제다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흥덕왕이 지리산에 차를 심게 한 것은 830년경 당에서 돌아온 진감국사의 수행을 돕기 위한 조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흥덕왕과 아들이 진감국사의 불제자였기 때문이다.

박동춘 이사장은 세미나 주제인 차의 명칭에 대해서는 동아시아의 흐름을 개관했다. 육우는 <다경>에서 차의 이름을 차(茶)·가(檟)·설(蔎)·명(茗)·천(荈)으로 정리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채다 시기와 찻잎 모양, 산지, 제다법에 따라 이름이 다양해졌다. 한국에서도 채다 시기에 따라 우전·우후·화전춘, 찻잎 모양에 따라 작설이라 불렀다. 고려에는 뇌원차·대차·노아차 같은 이름이 있었고, 차나무의 생육 환경을 담은 죽로차라는 이름도 등장했다. 19세기에는 경화사족들이 초의선사가 만든 차를 ‘초의차’라 불렀다. 박동춘 이사장은 “차와 명이 보편적인 이름이었고, 산지와 잎의 모양, 채다 시점, 제다법 등을 담은 명칭은 나라와 시대마다 새로 만들어져 차의 이상적인 의미를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쌍계사 차의 품격을 보여주는 대표 자료로는 추사 김정희의 글을 제시했다. 1854년 추사는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리산 승려 만허의 차를 두고 “승설차의 남은 향기라 이를 만하다”며 “연경 쌍비관에서 맛본 뒤 40여 년 동안 다시 보지 못한 맛”이라고 감탄했다. 금탑 아래에서 개미처럼 여린 찻싹을 따서 만든 차였다. 추사는 또 “제일의 두강차, 금탑에서 빛나네”라는 시를 남겼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철종 5년(1856) 봄에는 <희증만허병서>에서 만허스님을 “오묘한 제다술을 지닌 승려”라 부르며, 다종 한 벌을 보내 육조탑 앞에 차를 공양하게 했다.

박동춘 이사장은 “당시 스님들은 관가의 수탈을 피하려 차를 깊이 감추고 쉽게 내놓지 않았다”면서 “추사의 글은 차 문화 쇠락기에도 쌍계사에서 수행과 차가 어우러진 사원 차의 격조가 이어졌고, 제다를 주도한 이들이 수행승이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반면 1828년 초의선사가 머문 칠불암의 선승들은 늦게 딴 큰 잎을 햇볕에 말려 나물죽처럼 끓여 마셨다고 한다. 같은 지리산 자락에서도 제다 기술과 안목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채다 시기에 대해서는 중국 다서들이 곡우 전후를 꼽은 것과 달리, 초의선사가 “우리나라 차는 곡우 전후가 너무 이르니 입하가 지난 뒤 따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는 점을 소개했다. 다산이 아암 혜장 스님에게 보낸 시의 “보리 말릴 무렵” 구절을 근거로, 19세기 대흥사와 만덕사도 입하 무렵 차를 땄다고 봤다.

제다의 원리에서는 살청의 ‘중정(中正)’을 핵심으로 짚었다. 생 찻잎에는 독성이 있어, 불이나 증기로 이를 중화하고 색·향·미를 끌어내는 과정이 제다라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초의선사가 <동다송>에서 “덖을 때 중정을 넘지 않아야 색향미가 함께 드러난다”고 한 대목을 들었다. 화력과 찻잎의 양을 알맞게 조절해 빨리 덖고, 재건은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말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솥의 온도는 살청할 때 섭씨 230~300도, 재건할 때 70~110도 내외가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가스불은 온도 조절은 쉽지만 불의 탄력이 적어 차 맛이 밋밋해질 수 있다는 현장의 조언도 덧붙였다.

완성한 차를 보관하는 장다(藏茶)도 제다의 마지막 공정으로 강조했다. 차는 따뜻하고 마른 것을 좋아하고 차고 습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옹기나 도자기 항아리에 담고 말린 산죽 잎을 둘러 공기와 습기를 막았다는 것이다. 근현대 대흥사의 응송스님은 대솔로 차를 덖고, 재건을 마친 차를 뜨거운 온돌방에서 하룻밤 재워 남은 수분과 열기를 뺐다. 박 이사장은 아암스님과 제자 수룡스님, 초의선사로 이어진 덖음 산차의 전통이 범해와 원응을 거쳐 응송스님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박동춘 이사장은 “제다의 공정은 대동소이하지만 결국 차의 품색은 제다인의 안목과 통찰력, 청결함에 달려 있다”면서 “사원(사찰) 차의 전통과 특징을 더 깊이 밝힐 수 있도록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13교구본사 쌍계사는 2024년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2025년 차나무의 기원과 수령 현황을 점검하는 등 매년 세미나를 열어 한국 전통 차 문화의 명맥을 잇고 있다.

출처: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43384)